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김성훈 칼럼]광우병 대처 너무 안일하다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에 대한 논쟁이 분분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든 그 무엇이든 국민의 관심은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이다.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우선 광우병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을 간추려 보자.

첫째, 척추와 뇌와 내장 부분을 제외한 20개월 연령 이하의 수입 소고기는 대개 안전하다. 미국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소고기 소비량의 90% 이상이 20개월 이하의 어린 소이다. 문제는 미국에서 잘 소비되지 않고 광우병에 걸린 소의 99%가 연관된 30개월 연령 이상의 소고기이다. 한국, 일본, 중국 등 15개 주요 수입국들이 광우병 때문에 지난 4년간 사들이지 않아 가공용 등으로 헐값에 처분되었다.

둘째, 곰탕 등 온갖 탕류와 구이, 생간, 육회 등 이 지구상에서 유독 우리 겨레 특유의 애용 부위가 하필이면 위험물질(SRM)로서 소에게 광우병을 일으키고 사람에게 인간광우병을 옮기는 ‘변형 단백질 프라이온’의 서식처다. 프라이온은 소독해도 죽지 않고 섭씨 600도까지 가열해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셋째, 1996년 영국 정부는 광우병에 감염된 소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린다고 발표했다. 인간광우병의 전염인자인 프라이온은 대개 10∼40년간 인체에 잠복했다가 발병하므로 잠복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수혈, 장기이식, 의료기구에 의해서도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인간광우병으로 판명된 사망자만도 180여명에 이른다. 지난 8일엔 22세의 미국 여성이 유명을 달리했다.

넷째, 인간광우병은 그 증세가 마치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처음엔 기억력 감퇴와 우울증을 보이고 점차 평형감각을 잃어 비틀거리다가 발병 1년 반 안에 죽음에 이른다. 치매인지 인간광우병인지는 뇌를 열어 뇌 조직의 스펀지화 여부를 확인해봐야 알 수 있다. 미국 예일대학과 피츠버그대학 의료팀들에 따르면 사후 부검 결과 치매 사망자의 5∼13%가 인간광우병으로 드러났다. 미국에 25만∼65만명의 인간광우병자가 치매로 오인돼 죽었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럽, 미국 등과는 달리 사망했을 때 가족 동의가 필요없는 의무부검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섯째, 미국에서는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인간광우병 주의보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그 예방법까지 소개했다. 30개월 연령 이상의 소고기 섭취는 삼가고, 특히 위험물질이 모여 있는 특정 부위와 뇌와 뼈에 붙어 있는 살코기 근육 등의 섭취 시 조심해야 한다.

여섯째, 유럽에서는 30개월 이상 소에 대해 이상행동 여부에 관계없이 광우병 전수검사를 시행하고 식용으로 쓰지 못하게 한다. 일본은 아예 식용으로 사용되는 모든 소고기에 대해 광우병 전수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도 20개월 이하의 뼈 없는 살코기에 한정하고 있다. 미국은 30개월 이상의 소에 대한 검사는 하지 않는다. 광우병 의심 소의 2%에 대해서만 검사한다.

일곱째, 이번 한미 소고기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그동안 수입 소고기에 실시하던 전수조사를 포기하고 3% 이내의 샘플 조사만 하기로 했다. 그 대신 식당 면적 100㎡ 이상의 음식점에 대해 원산지 표시 조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는 전체 식당의 40%도 되지 않는다. 선택권이 거의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학교·군대 급식은 인간광우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셈이다.

자, 이쯤의 정보만 가지고도 왜 지구촌 사람들이 인류역학(疫學) 사상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긴장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번 캠프데이비드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전격 타결된 4·18 미국산 소고기 수입 위생조건(안)은 20일 동안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발효하기로 되어 있다. 예고기간 우리 국회와 정부가 정치적·경제적 이해를 떠나 오로지 국민 건강과 생명만을 생각하며 수정, 보완, 폐기 사항을 세밀히 논의했으면 한다.

상지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