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자유무역이 개발도상국의 식량난을 부채질한다.”
세계은행은 최근 ‘개발을 위한 농업과학기술에 대한 국제평가(IAASTD)’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세계 자유무역의 전위대나 다름없는 세계은행이 그동안의 정책에 잘못이 있었다고 자인한 것이다.
국제 농업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옳지 않다”고 소리 높이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농민들이 매년 엄청난 양의 보조금을 챙겨왔다. 하지만 말 그대로 ‘먹고사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인 빈국에서는 농지면적과 생산량이 해마다 줄어들었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형 농가나 농업 관련 산업은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미국 농가 소득은 10년 전보다 50% 늘었고, 유럽 농가 소득도 지난 2년 새 20%나 증가했다. 각국 정부가 물심양면으로 밀어준 덕이다. 미국과 유럽의 농가에는 한 해 평균 각각 440억달러(약 46조원), 420억유로(약 66조원)의 천문학적인 보조금이 지급됐다. 또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 주목받으면서 칼길, 몬산토 같은 GMO 회사의 올 1분기 수익은 지난 분기보다 배로 늘었다.
반면 아프리카의 농업 생산량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해 생산량은 1억3500만t으로 전년에 비해 6% 감소했다. 특히 이집트, 세네갈 등 식량난이 심각한 아프리카 북부에서는 감소폭이 무려 20%나 됐다. 아프리카 국가 외에도 아이티, 카자흐스탄, 스리랑카 등 다른 대륙의 빈국 대부분도 비슷한 실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나라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0∼80%나 되기에 식량위기는 곧 국가 위기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관세와 보조금을 죄악시하던 주요국의 논리가 결국 가진 자의 주머니만 채워준 꼴이 되면서 그동안 국제무역의 틀을 짜온 서방사회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등은 한 발 물러서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달 긴급 식량원조기금 2억달러를 아프리카 등 빈곤지역에 지원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세계은행도 로버트 졸릭 총재가 제시한 ‘신 뉴딜정책’을 승인하고, 아이티에 1000만달러를 지원하는 한편 내년 아프리카에 대한 농업차관을 올해의 두 배 수준인 8억달러로 늘릴 방침이다.
윤지로 기자
국제농업도 양극화
기사입력 2008-05-13 10:20:41
기사수정 2008-05-13 10:20:41
기사수정 2008-05-13 10:20:41
美·유럽농가 보조금 덕에 소득 급증
빈국은 생산량 매년 감소
빈국은 생산량 매년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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