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냉각탑 폭파로 비핵화가 진전되면서 남북관계와 비핵화의 속도 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 정부의 당면한 과제로 떠올랐다.
어렵게 마련된 비핵화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북관계의 진전이 필수적이라는 점과, 지금과 같은 북한과 미국의 ‘직거래’를 통한 한반도 상황 변화가 지속된다면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역할이 더욱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응전략 없는 정부=북한의 냉각탑 폭파 이후 대북정책에 대한 정부의 기류는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비핵화 진전에 따라 ‘비핵·개방·3000’ 정책을 구체화할 시점이 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반면,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29일 “(북핵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된 것이 아니고 조금 나아진 것 아닌가”라며 “비핵·개방·3000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 노선에 대한 혼선도 감지된다. 통일부의 다른 핵심 당국자는 “비핵·개방·3000에서 ‘비핵’이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와 함께 가는 것”이라며 “비핵이 전제가 아닌 만큼 이번 핵 신고로 남북관계가 급진전하고 정부 분위기가 확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해 온 정부의 설명과는 전혀 궤를 달리한다.
문제는 정부가 상황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비핵·개방·3000’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측 정부가 지난 정권과의 합의 이행을 약속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남북 사이에는 기본합의서부터 10·4 선언까지 여러 합의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는 이행된 것도, 되지 않은 것도 있다”면서 “남북이 만나서 얘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우리 정부가 상황의 시급성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8월까지 6자회담이 급진전할 가능성이 큰데, 그때까지도 남북관계의 진전이 없다면 6자회담 속에서 남측이 끌려가는 상태가 된다”면서 “하루빨리 남측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면서 남북관계 복원을 하지 않으면 타이밍을 놓친다. 주도적 접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이후 남북관계가 꼬였을 때마다 물꼬를 튼 계기가 된 것은 대북특사 파견”이라며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특사를 파견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핵과 개방을 너무 강조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이미 거부한 상태에서 다시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면서 “핵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다루고, 남북관계는 정상적인 대화 복원을 시도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그러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다고 해도 당장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된 것도 아니고 경협에 지장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조바심을 낼 상황은 아니다”면서 다소간의 조정기는 감내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남북이 평화공존한다는 근본적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6·15와 10·4 선언을 회복하는 조치 외에는 북한을 설득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상민·조수영 기자 21smin@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