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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다시 불붙은 '존엄사' 찬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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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죽을 권리" vs "생명은 최우선 가치"
바다에서 다이빙하다 전신마비가 된 남자가 있다. 그는 무기력한 수동적 삶보다는 자유의지에 의해 적극적으로 죽을 권리를 원한다. 그의 소망은 바로 ‘존엄사’다. 이는 2005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칠레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시 인사이드’의 주인공 라몬 삼페드로의 얘기다.

이 영화는 삶을 영위하는 것 못지않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중요한 가치라고 외친다.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서울서부지법이 식물인간 상태인 70대 노모의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해 달라는 자녀들의 ‘연명치료행위 중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존엄사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인간 생명은 최우선 가치 vs 생명 자기결정권 존중해야= 우리나라에서 존엄사 허용 여부는 법조계, 의학계, 종교계 등 각 분야가 생명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 존중에 대한 견해차로 각기 입장을 달리한다.

법조계는 우리나라에 아직 명시적 법규가 없고 대법원 판례도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기본적으로 존엄사는 허용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즉, 고통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인위적으로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형법상 ‘촉탁살인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존엄사 반대론자들은 인간의 생명권은 최고의 가치로서 현행 헌법과 형법 역시 인간의 생명 존중과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법무법인 다솔의 신동선 변호사는 “존엄사를 허용하면 오남용 위험이 있어 당사자의 명시적 의사가 없으면 안락사는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존엄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가 2001년 4월 마련한 ‘의사윤리지침안’에서는 안락사 및 의사 조력 자살을 금지하고 있으나 “의사가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익하고 무용한 치료를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규정해 놓았다.

존엄사 찬성론자들은 인간의 자율권을 존중해야 하고 삶의 질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논리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환자 본인이 치료 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의사는 환자가 자율적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협력자로서 설명할 의무만 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존엄사는 환자가 자기결정권에 따라 생명연장 조치를 중단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인간의 기본권리”라며 “이는 자기결정에 따른 치료 중단의 결과일 뿐 목적이 아니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 제각각= 광주지법은 지난 1월 근이영양증을 앓아 20여년간 간호해 온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윤모(53)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살인은 법정 최저형이 징역 5년이지만 선처를 베푼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윤씨가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아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자체 조사를 통해 안락사를 시행한 가족과 의사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례도 있다. 2006년 6월 말기 간경변 환자인 김모씨(72·여)에게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낸 딸과 의사 2명이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산소호흡기와 상관없이 하루를 넘길 수 없었다”는 주치의 주장과 대한의사협회의 감정서 등을 토대로 무혐의 처분했다.

반면 우리나라 안락사 논쟁을 촉발한 2004년 ‘보라매 병원 사건’ 판결에선 법원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뇌출혈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가족에게 살인죄, 퇴원시킨 의사 2명에게는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항소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불치 상태의 환자 스스로 진지하게 치료 중지를 요구하고 병원윤리위원회 등 검증 절차를 거쳐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소극적 안락사 등 치료 중지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극적 존엄사는 공감대 형성=존엄사는 당사자의 의사를 기준으로 자발적 존엄사와 비자발적 존엄사, 집행자의 관점에선 소극적 존엄사와 적극적 존엄사로 구분한다.

불치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숨지게 하는 ‘적극적 존엄사’와 달리 새로운 행위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행위를 중단하는 것으로 숨지게 하는 ‘소극적 존엄사’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공감지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06년 국정홍보처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설문조사에서 ‘존엄사는 허용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2580명 중 22%가 ‘매우 그렇다’, 48%가 ‘대체로 그렇다’라고 답해 찬성 의견이 7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제한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도 존엄사가 합법화될 경우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보였다. 존엄사는 일단 합법화되면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가 어려워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극적 존엄사 찬성론자들은 합법화 이전에 환자의 회복 불가능 기준 등 존엄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명확하게 구분할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존엄한 죽음에 대한 환자 본인의 의사와 판단 시점을 명문화하는 규정도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사고 전문 최재천 변호사는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사안은 생명윤리위원회 등을 만들어 엄격한 절차를 거쳐 시행되도록 제도적, 법적 제어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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