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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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건축물 도대체 무슨 양식이야?

창문은 고딕, 창틀은 로마네스크, 지붕은 바로크…
◇네오고딕을 근간으로 한 유사고딕의 혼성모방 형식을 띠고 있어 교회인지 위락시설인지 잘 분간이 안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신도시 교회 건축물들. (사진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 ①판교의 은혜와 진리교회 ②산본의 감리교회 ③수원의 장로교회 ④분당의 가톨릭 성당.
한국 중대형 교회 건축물이 네오고딕을 근간으로 한 ‘유사고딕’으로 지어지고 있어 국적도 없고 천박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때문에 이들 교회가 지역사회와 유기적 관계도 희박하며 주변 환경과 조화롭지도 못하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이정구(54) 성공회대 신학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한국 교회 건축의 제국성’에서 이같이 비판했다.

‘고딕(Gothic)’이란 중세 유럽교회 건축의 진수. ‘유사고딕’은 이 교수가 창안한 용어로, 고딕을 복고하려고 노력했던 ‘네오고딕’ 양식을 기초로 해 고딕의 형태를 부분적으로 변형시킨 다양한 형태의 고딕풍을 지칭한다. 이러한 유사고딕이 한국 교회건축에서 유난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경기도 판교의 은혜와 진리교회, 수원의 장로교회, 산본의 감리교회, 분당의 성요한 가톨릭 성당 등을 예로 들었다. 유사고딕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 교회는 교회마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차별성까지 가미돼 F-15 전투기나 아폴로 우주선, 디즈니랜드 등을 연상케 하는 특이한 혼성모방적 모양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들 교회 건축을 싼값으로 빨리 지으려고 한 나머지 정통 고딕에서 벗어나 조악하고 싸구려 예술 같다고 혹평했다.

실제 이들 교회에서 십자가를 빼면 또 다른 유사고딕으로 지어지는 웨딩홀이나 스파랜드, 러브호텔 등과 분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교회사를 전공한 이 교수는 종교를 이미지로 읽어내는 작업인 ‘종교예술’을 강의해 오다가 1999년부터 한국교회 건축물의 문제점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현대건축에서 한국교회만의 토착화가 불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창문은 고딕으로, 창틀은 로마네스크로, 지붕은 바로크로 짜깁기되는 오늘의 교회는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는 것이다.

이것은 네오고딕의 복원만도 못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고딕은 가톨릭의 전통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교로부터 개혁의 기치를 들고 나온 개신교가 새로운 교회 양식은 창출하지 못할망정 ‘짝퉁 고딕’으로 일관하는 것은 ‘개신교적’이지도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1910∼1930대의 초기 교회양식에서 토착화한 한국교회 양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건축물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유사고딕이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전형적 건물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국교회 건축이 유사고딕으로 범람한 현상을 이 교수는 서양 선교사로부터 이식된 근본주의 신학적 성향과 정복 지향적인 선교 신학을 극복하지 못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자신의 논제에서 가톨릭 명동성당과 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 성당의 건축 목적과 양식을 사례로 들었다. 이들 건축물은 선교사들이 스스로 건축의 주체가 되어서 서양의 제국적 건축물을 이 땅에 이식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한국 교회가 대형화 지향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오히려 상업공간 안의 임대 교회를 교회건축의 한 장르로 정착시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래의 콘셉트 교회는 단지 외형적인 양식이 문제가 아니라 친환경적 재료, 주변과의 조화, 지역과의 유기적 관계, 최소의 경비, 한국의 언어로 축조해 최대의 기능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논문은 최근 간행된 ‘제국의 신’(성공회대 신학연구원 편저, 동연)의 세 번째 논제로 수록됐는데, 366쪽 분량의 이 책에는 기독교의 공격적 성향을 경계하는 14개의 논제가 담겨 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