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정연주 KBS 사장은 '씨알의 소리' 편집장과 한겨레신문 워싱턴특파원ㆍ논설주간 등 30년 넘게 언론계에서 활동하며 뚜렷한 소신을 고수해왔다.
언론, 북한, 대미관계 등에 확고한 주관을 내세우며 거침없는 표현을 사용했던 그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를 묶어 부르는 '조중동'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조폭적 언론'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런 이력으로 그는 서동구 전 사장이 낙하산 논란으로 9일만에 물러난 뒤 KBS 노동조합, 언론관련 시민단체 등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03년 4월 KBS 사장에 임명됐다.
KBS를 젊고 신뢰받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며 사장에 취임한 그는 강력한 개혁 작업을 추진했다. 대팀제를 도입했고, 지역국 조정에 나섰으며 1라디오의 시사전문 채널화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취임초 미국 시민권자인 두 아들의 국적문제로 홍역을 치른데 이어 2004년 말에는 '반(反) 정연주 사장'을 표방한 KBS노조가 새롭게 꾸려지면서 호된 시련을 겪었다. 노조는 정 사장의 퇴진을 공공연히 요구하며 개혁드라이브에 반대하고 나섰고, 정 사장이 '탄핵 반대 코드 방송'으로 편파 방송을 했으며 경영적 측면에서도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정 사장은 2006년 6월 임기가 만료되면서 다시 한 번 난관을 만났다. 하지만 정 사장은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 및 당시 야당과 일부 언론의 극심한 반대를 뚫고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정 사장의 연임을 놓고 노조 등에서는 대선을 앞둔 청와대가 친여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 전 사장을 연임시키기 위해 이사진 구성 등에 다양한 영향을 시도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의 지지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진 정 사장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거취와 관련해 다양한 경로로 압박을 받았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5월 KBS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청구했고, 비슷한 시기에 KBS의 한 직원은 법인세 환급소송 취하와 관련 배임 의혹을 제기하며 정 사장을 형사고발했다.
또 이사회의 역학구도도 친여 성향으로 재편됐다. 김금수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난 후 유재천 이사가 새 이사장으로 선출됐고, 이어 신태섭 이사의 후임으로 강성철 이사가 선임됐다.
정 사장은 배임혐의 고발과 관련된 검찰의 소환 조사 요청에 대해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5차례 불응했고, 감사원의 출석 요구에 대해서도 4차례 응하지 않으며 버텼다.
이런 그의 태도에 대해 일부에서는 공영방송 사장이 오히려 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정 사장은 재임 중에 좌파 성향이 짙은 프로그램을 잇따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고, 경영 능력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감사원은 5일 KBS의 누적적자와 방만경영, 인사전횡, 법인세 환급소송 취하에 따른 회사손실 초래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KBS 이사장에게 정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 사장은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감사원의 결정을 반박하며 사장 자리를 고수할 의사를 비친 후 해임 요구 처분 무효 확인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8일 KBS 이사회가 정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사실상 임기를 마감하게 됐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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