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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 아시아 문화기행] 중국 간쑤성 샤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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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 나브랑 사원의 거대한 황금빛 불탑 인상적
오체투지하며 ‘사원돌이’ 하는 사람들 모습에 숙연해져
◇샤허 외곽에는 엄청난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당대의 고도 시안(西安)을 지나 서쪽으로 내달릴수록 중국인들의 자부심 어린 가치. 즉 ‘중화’라는 두 글자가 점점 옅어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눈매는 점점 중앙아시아의 느낌을 닮아 가고, 음식 또한 돼지고기에서 양고기로 바뀌어 간다.

실크로드의 첫 번째 도시라는 란저우(蘭州)에서 서역의 느낌에 흠뻑 취해 있을 즈음 서쪽에서 온 일본인 여행자 가쓰로부터 샤허(夏河)라는 도시의 이름을 들었다. 황량하다 못해 입만 벌리면 모래 먼지가 퍽퍽하게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건조한 란저우에서 촉촉한 이슬을 머금은 대초원이 펼쳐진다는 이야기는 마치 동화 속 세상 같았다.

‘그런 곳이 있었어?’ 언제나 이 같은 질문이 나오면 나는 곧 여장을 꾸리고 길을 나선다. 샤허. 해발 2920m. 티베트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의 6대 사원이 있는 곳이면서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칭하이성과 간쑤성 사이에 교묘하게 걸터앉은, 도시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작은 마을이다.

미니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동네가 한눈에 파악될 정도로 샤허는 좁았다. 포장된 차도라고는 마을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1.5㎞ 길이의 인민로뿐. 버스정류장이 있는 서쪽 신시가지에는 한족과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이 살고 오래되고 황량한 느낌이 나는 동쪽은 티베트 사람들이 주거한다. 숙소는 양쪽에 있는데, 외국인들은 열이면 아홉이 동쪽에 머문다. 티베트라는 단어가 주는 마력에 홀린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고만고만한 개성 없는 중국의 중소도시는 이제 따분해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고도가 높아져 머리가 띵하긴 했지만, 숙소를 잡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노상에서 얼핏 본 거대한 티베트불교 나브랑 사원의 거대한 황금빛 불탑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브랑 사원은 1710년 라싸 최대의 사원인 데풍 사원의 주지를 지닌 잠양 첸파 1세에 의해서 세워졌다. 실크로드 한복판에 웬 티베트 사원이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현재의 티베트자치구는 과거 티베트령의 반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반은 칭하이, 간쑤, 쓰촨, 윈난성 등 서부 4개 성에 분할되었다. 지금도 이곳은 티베트자치구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티베트 사원이다. 
◇나브랑 사원의 백미인 황금보탑.

티베트불교에는 우리네 탑돌이와 거의 같은 형식의 사원돌이인 ‘코라’라는 것이 있다. 사원에 오는 모든 사람이 으레 한 바퀴씩 돌고 간다.

대부분의 티베트 사원이 산등성이 사면에 들어선 탓에 코라를 하다보면 언제나 제법 괜찮은 풍경과 조우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티베트식 절인 오체투지를 하며 코라를 하기도 하는데, 육체의 극한을 시험하는 고행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코라를 하며 내내 느낀 건데, 나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맥그로드 간즈에서도, 티베트 본토 라싸에서도 코라를 할 때 느끼던 사람들의 편안함이 여기서는 없었다. 뭔가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유일한 존재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승려 2명이었다. 아까부터 어떤 풀을 비닐로 싸서 집은 뒤 자기들끼리 던지면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중간쯤 돌았을까? 나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자, 꼬마 승려들이 나에게 그 풀을 내밀었다. ‘요런 맹랑한 녀석들 너희들 노는거 다 봤는데 그걸 줘?’
◇필자를 중국인으로 잘못 알고 독초를 던졌던 동자승들.

거절하고 돌아설 때 아이들이 풀을 내 손에 던지고 뭐라고 외치면서 도망갔다. 손목이 쓰렸고, 금세 손은 파랗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도망간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어떤 노스님이 꼬마 승려들을 잡아왔다. 스님은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중국어로 물어봤고, 나는 띄엄띄엄 티베트말로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다. 한국이라는 말이 떨어지려는 찰나 꼬마 승려들이 나한테 잘못했다고 매달린다.

애초부터 마을 사람들은 중국인과 똑같이 생긴 내가 코라를 할 때부터 의아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무시하기만 했던 중국인처럼 보이는 녀석이 신성한 코라를 할 때 의협심 넘치는 꼬마 승려들은 나에게 독초를 안겨서 따갑게라도 해주겠다는 신념으로 뒤따라와서 독초를 던지고 도망간 것이다.

중국 건국 60여년, 과거 티베트령의 변방이었던 이 땅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중국 지배를 수긍하지 않고 있다. 대견하다면 대견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

불쾌하다고 할 수도, 유쾌하다고 할 수도 이 사건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호텔 방에 누워서도 묘한 간극을 연결할 고리를 발견하지 못했고, 단기간에 답이 구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만 내린 채 나는 다음날 아침 작은 마을 샤허를 빠져나왔다.
◇코라(사원돌이)를 하는 티베트 할머니들.

그 후로 과거 중국 땅이 아니었던 지역을 방문할 때는 언제나 “나 중국사람 아니야. 한국사람이야”라는 뜻의 중국어인 “워 부스 중궈런. 워 스 한궈런”이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이 말은 관광지가 아닌 위구르 지역이나 티베트에서 나를 보호하는 부적과도 같았다.

잊혀졌던 샤허가 다시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올봄이었다. 티베트 사람들의 봉기로 한참 시끄러웠던 그즈음 샤허에서도 소식이 들려왔다. 유혈 시위가 발생했고, 현지 취재를 나간 외신기자들에게 승려들이 몰려와 ‘우리에겐 인권이 없다’고 외친 후 공안에 끌려갔다고 신문은 보도하고 있었다. 올봄 그곳에서 19명이 사망했고 대부분은 승려였다. 그 기사를 보면서 그 꼬마들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그 녀석들이 한참 혈기방장할 나이일 텐데….

여행은 길의 연속이다. 인생이 기쁨의 연속이 아니듯 여행 길에서도 슬픔은 존재한다. 더 다가갈수록, 좀 더 가까이 갈수록 슬픔도 좀 더 또렷해진다. 언제나 이것이 문제였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한국에서 샤허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관문 도시는 중국의 시안이다. 시안에서 란저우를 거쳐 샤허로 가야 한다. 샤허에서 연결되는 대도시는 란저우와 칭하이성의 성도인 시닝뿐이다. 2008년 현재 동쪽 지역의 숙소는 총 6곳이다. 작은 마을인데도 의외로 요리는 다양한데, 이 일대가 과거 네팔, 쓰촨, 간쑤 등 중국 내 각 지역은 물론 인도아대륙과도 연결된 교통 물류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식당마다 커리 요리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