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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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5가지 미스터리'…통화량 넘치는데 돈이 없다?

얼마 전만 해도 멀쩡했던 우리 경제가 왜 이럴까. 갑자기 코스피 1000이 무너지고 원화가치가 폭락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신용도가 나빠져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루머까지 나돈다.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고 하는데 은행과 기업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는 미국의 금융시장이 붕괴된 영향이 우리 경제에 본격적인 여파를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영향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오고 현재도 영향을 받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마치 이해하기 힘든 ‘미스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광의 통화(M2)는 작년 같은 달보다 14.8% 늘었다. 이는 전달의 15.1%보다는 둔화한 수치지만, 여전히 높은 증가율이다. 그런데도 국내 은행들은 “돈이 부족하다”며 한은에 손을 벌리고 있다. 기업들 자금 사정도 마찬가지다. 원인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기관들끼리 서로 믿지 못해 돈을 빌려주지 않고 채권 발행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줄어 중소기업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

달러화 대비 주요국 통화 절상률을 보면 작년 말 대비 한국의 원화는 34.2%나 하락해 유로(-11.5%), 영국파운드(-18.3%), 호주달러(-23.5%), 뉴질랜드달러(-22.4%), 태국 바트(-13.2%), 대만달러(-2.6%), 싱가포르달러(-4.0%)에 비해 하락폭이 훨씬 컸다.

금융 전문가들은 한은이 마음만 먹고 대규모 달러화 매도 개입에 나선다면 환율을 급락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이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의 불안감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환율을 끌어내리더라도 이내 반등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을 보면 한국의 신용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 낮다. 5년 만기 외평채 CDS 프리미엄은 지난 22일 4.6%에서 23일 5.57%로 1%포인트 가까이 치솟았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CDS프리미엄은 23일 기준 4.22%이며 태국은 4.14%다. CDS란 채권이 부도가 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 주는 계약인데, CDS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그만큼 부도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한국의 신용 위험이 커진 것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경제 규모가 다른 신흥국보다 크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은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말레이시아와 태국 채권에 대한 CDS 거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고 이런 상태에서 CDS 프리미엄이 국가 신용도를 온전히 반영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통상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내려가고 CD와 연동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내려간다. 하지만 기준금리와 CD금리는 요즘에 따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채권 매수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은행의 신용위험이 커진 데다 기관 투자가들의 자금사정이 악화하면서 보유하고 있는 은행채마저 내다 팔고 있다. 사려는 세력이 없으니 채권값은 더욱 내려가고 금리는 높아진다.

세계적인 신용경색의 원인은 미국인데 국내 주가가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이유는 외국인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도 있지만 한국에 대한 투자 위험이 크다고 느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키코(KIKO) 등 파생상품 투자로 중소 수출기업과 은행의 동반 부실 우려가 제기되는 점도 원화자산 매각을 재촉하고 있다. 더욱이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의 속성상 부실 규모가 얼마일지 알 수 없는 점이 시장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임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