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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on] '한국의 롭 헬포드' 조성아, 노래를 통해 추억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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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닷컴] 보컬의 역량을 비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거론되는 두 사람이 있다. 1994년에 데뷔한 김경호와 2001년 밴드 마담미료를 통해 데뷔한 조성아다. 물론 이 둘을 단순하게 비교한는 것은 어렵다. 대중성에서 단연 앞서고 있는 김경호와 언더에서 활동하는 조성아가 비교대상이 되는 것이 무리일 뿐 아니라, 음악의 분야도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이 비교된다는 자체만으로 볼 때는 흥미롭다. 국내 최고라 불리우는 김경호 옆에 조성아라는 인물이 나란히 서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성아의 보여주는 성역과 고음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그런 조성아가 전혀 다른 색깔의 음악을 들고 왔다. 이번에 새로 낸 솔로앨범 '조성아-사람이 그리운 날에'는 이전에 조성아가 보여준 모습과 너무나도 다르다. 무대 위에서 금속성의 날카로운 샤우팅을 선사하던 조성아가 아니다. 그 스스로도 '다르다'라고 말한다.

"원래 사일런트 아이의 노래를 듣던 분들에게 들려주면 누가 부른 것인지 모를꺼에요. 제 솔로 앨범의 곡들은 헤비메탈에서 다루면 낯간지러울 수도 있으니까요. 제 딴에는 대중들에게 들어갔다고 생각하니까요.

대중적으로 들어갔다는 조성아의 말은 그의 솔로앨범을 듣는 내내 국내 대중 음악 역사속에서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타이틀곡 '노총각부르스'를 비롯해 '돌아올꺼야' '미안합니다' '쓸쓸이 홀로' '술' '낙서' 등 음악은 80~90년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김현식, 들국화, 김광석, 유재하를 꼭 닮았다. 당시 10~20대를 보내고 현재는 정서적으로 피폐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세대로서는 그리움의 느낌마저 선사한다.

"제가 음악이 편견이 없는 잡식성이에요. 헤비메탈을 했지만, 지금의 솔로앨범들 역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이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너무 음악들이 디지털화되어서 기계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제가 80~90년도에 한창 자라면서 들은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요새 30~40대 분들이 좋아할만하고 들을만한 음악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주변 분들에게 곡을 들려드리니 제 부모님 세대들이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조성아는 '한국의 롭 헬포드'로 불리운다. 전설적인 그룹 쥬다스 프리스트의 보컬인 롭 헬포드와 비견되는 것이다. 조성아 스스로도 쥬다스 프리스트를 좋아하고 군 제대이후 그같은 류의 밴드생활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갔어요. 일찍 제대하고 음악을 하고 싶었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병장을 마치고 하사관으로 지원해 7년만에 해군 중사 제대를 했어요. 그 당시에 쥬다스 프리스트같은 헤비메탈류의 밴드를 하고 싶어서 2001년도에 제대하자마자 '마담미료'라는 팀을 짜서 밴드생활을 했고 2002년도 6월에 사일런트 아이에 들어갔어요"

이후 언더그라운드 영역에서 조성아라는 이름은 앞서 말했듯이 롭 헬포드, 김경호와 비교되며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때문에 이번 그의 솔로앨범은 자칫 마니아들에 대한 배신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번 솔로앨범은 배신감이 아니라 기존의 팬들을 흡수함과 동시에 또다른 층의 마니아들을 만들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복고풍 락 사운드를 담아 1년에 걸쳐 제작된 '조성아-사람이 그리운 날에'는 전곡을 손수 작사-작곡했으며 편곡 부분은 기타리스트 이경완의 도움을 받았다. 연주는 현 사일런트 아이의 동료인 드러머 권세호와 베이시스트 김현모, 키보드 주자 이희승의 도움을 받았고, 1994년 015B 5집 '단발머리'를 부른 조성민과 전 시나위의 손성훈, 글루의 정원재가 보컬 피처링을 맡았다. 또한 곡 전체가 헤비메탈식의 터트리는 느낌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무엇인가 꾹꾹 누른 듯한 감정 표현이 드러나 조성아와 동시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는 말이나 행동보다는 '살아있는'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진 듯한 조성아가 마니아층이 아닌 대중에게 접근하는 수단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음악과 죽어있는 음악으로 모든 것을 구분하고 싶다. 세상은 이미 음악이 아닌 것들을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비상한 재주를 알아버렸다. 그런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커다란 모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대단한 자신감, 다르게 생각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아주 어리석은 색각일지도 모른다. 아주 이상한 노래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내는 바보상자에 의해서 다듬고, 또 다듬어진, 하나의 흠도 보이지 않는 노래들을 틀어놓고 예쁜이 표정을 만들어내는 그런 것들에게 싸워 이길 용기가 내게는 사실 없었다. 소총을 들고 비행기에 대항하는 아주 우스운 모습.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난 이 모습들이 숫적인 열세에 놓인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와 내 친구들은 '정도'를 선택한 것이다. 예쁘게 길들여진 붕어들은 직업란에다 '가수'하고 쓰겠지? 연예인? 우리는 '음악인'이다. 살아있는 음악을 하는 나는 '음악인'이라고 쓰겠다. 7년 동안의 군생활을 마치고 부대를 나오던 날 나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또다른 전쟁을 치르러 간다"' (사일런트 아이 홈페이지에서 조성아가 남긴 글)

퍼포먼스 위주로 '보이기'식 음악을 하는 지금의 세태에서 어떻게 보면 조성아와 같은 음악을 하는 이들은 '바보'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본인도 "헤비메탈만 하면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요"라고 말하면서 헬스 강사 트레이너, 이삿집 센터, 백화점 향수 시험 모델 등을 한 조성아는 어쩌면 '진짜'를 하면 배고프고 '가짜'를 하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음악판이 답답했을 것이다. 음악이 '삶'인 사람 입장에서 그 모습이 '거짓'으로 만들어진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음악이 조성아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어릴 적 부터였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야구선수를 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다. 또한 집안 분위기까지 음악과 연기쪽 사람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가수를 하는 본인은 물론, 동생은 '뉴하트' '아름다운 시절' 등에 출연한 연기자 조성희다. 피처링을 도와준 조성민도 사촌형이고, 또다른 사촌동생도 현재 영화쪽에 있다.

"집안이 어떻게 하다보니 그쪽으로 빠지게 되었어요. 이게 그것을 누가 그런 쪽으로 가자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다보니 형제들이 모두 이렇게 되었죠. 그렇다고 모여서 이런 쪽의 이야기를 하고 그러거나 하지는 않아요"

조성아는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자신의 솔로앨범을 선물했다. 흔히들 가수들이 새 앨범이 나왔을때 주는 PR판 CD가 아니라 포장도 뜯지 않은 CD였다. MP3등으로 인해 CD를 사본 지 오래였기에 그 선물은 뜻밖이었다.

"전 MP3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동생들에게 MP3를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죠. 모르긴 몰라도 CD를 껍질 베끼고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가사는 어떻게 썼을까, 해설은 어떻게 썼을까라는 기대감이 아직은 CD에 더 있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때문일까. CD 자켓 역시 LP판 그득한 테이블 앞에 LP만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이 등장하고, 옆에 LP판 '조성아 솔로앨범'과 통기타가 놓여있다. 자켓안 사진들도 소주와 삽겹살, 공중전화 부스, 오래된 구두 등 하나하나가 세세한 눈으로 보면 30~40대의 감성을 녹이고 있다.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열광케했던 조성아는 솔로앨범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조용히 다스리고 있었다.

유명준 기자 neocross@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