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근 전 농협회장이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됨에따라 조합원 240만명의 거대 조직 농협이 다시 대형 비리 사건에 휘말리고 있다.
농협이 '부정.비리의 온상' 이미지를 벗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회장 권한과 감사시스템 등 지배구조를 보다 과감히 뜯어 고쳐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1~3대 회장 모두 사법처리..축산대표 구속
농협은 80년대 후반 관치에서 벗어나 중앙회장을 조합장들이 뽑기 시작한 이후 1~3대 민선 회장이 모두 구속과 함께 사법처리되는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민선 초대 회장인 한호선(88년3월~94년3월)씨는 94년 3월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고, 2대 원철희(94년3월~99년3월) 회장 역시 재임 중 6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3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이어 3대 정대근 회장마저 작년 11월 30일 징역 5년과 추징금 1천300만원의 형을 선고받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2005년 12월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 부지 285평을 현대차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현대차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였다.
특히 정 회장의 경우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2006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당시 홍기옥 당시 세종캐피탈 대표로부터 50억원을 받은 혐의까지 더해졌다.
지난 7월에는 농협 축산경제 대표까지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남 씨는 농협사료 대표 재임 당시 사료첨가제 납품업체로부터 12억여원을 상납받고, 작년 3월 축산경제(옛 축협) 대표 자리에 오른 뒤에도 사료첨가제 납품업체와 사료원료 보관.운송업체, 농협 직원 등으로부터 5천여만원의 뇌물을 받았다.
◇ 회장 인사권 없애 명예직으로 해야
이 때문에 '농협의 지배구조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상 큰 헛점이 있지 않고서야, 3명의 회장이 20년동안 계속 권력에 줄을 대고 전권을 휘두르다 범법에 이르는 행태가 반복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감독 당국인 농식품부는 적어도 정 회장 사건의 경우 문제의 근원이 농협법상 지배구조 규정 등 '제도'보다는 '개인'에 있다는 입장이다. 2005년 농협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중앙회장이 사실상 전권을 쥐고 휘둘렀지만, 새 농협법을 통해 그 폐단과 악습을 차단했다는 주장이다.
2005년 농협법 개정으로 농협회장의 법적 권한이 ▲ 대정부.국회.정당 등에 대한 건의 ▲ 농협관련 법령개정 건의 ▲ 외국기관과의 협약 체결, 국제기구 가입 등으로 한정되고, 구체적 업무 결제권이나 예산권 등은 모두 각 사업부문별 대표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 회장의 경우 법 개정 전인 99년 회장직에 올라 2004년 재선, 법 개정 이후까지 집권한 특이한 경우"라며 "거듭된 연임으로 법과 상관없이 조직을 완전히 장악해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형식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여전히 회장은 인사권을 통해 농협 실무 전반이나 각종 이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행 농협법 130조에 따라 회장은 사업전담 대표이사와 전무이사를 추천할 권리를 갖고, 조합장 대표들의 회의인 '대의원회'에서 동의를 거쳐 임명할 수 있다.
경제.신용 등 주요 부문 대표가 오직 회장을 통해서만 추천될 수 있다는 점, 중앙회의 지원이 아쉬운 조합장들이 회장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 등이 '1인 권력 집중' 가능성의 근거로 거론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부문은 감사시스템이다. 현재 농협중앙회의 감사위원회는 6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는데, 감사위원은 회장과 사업전담대표, 전무이사를 제외한 이사들이 자신들 가운데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임명된다. 위원 6명 가운데 적어도 3명은 조합장 출신 이사가, 나머지는 사외이사가 맡도록 비율이 정해져있다.
문제는 전체 이사진 30명 가운데 10명인 사외이사 역시 사업대표와 마찬가지로 회장 추천을 받아 대의원회에서 뽑힌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회장은 자신을 감시할 감사위원 가운데 절반을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
이같은 지적을 반영, 농식품부는 지난 9월 입법예고한 농협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중앙회장의 권한을 더욱 축소하는 내용을 담았다.
연임 횟수를 한 차례로 못박고, 현재 사실상 회장이 단독 추천하는 각 사업부문의 대표이사.감사위원장.감사위원.사외이사 등의 주요 임원을 임명하려면 반드시 인사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치도록 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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