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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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가 찾아오면…문화계 키워드는 ‘가족’

드라마·연극 등 가족애 재조명 봇물
문학계선‘어머니’가 대세 이뤄
세상살이에 치일수록 기댈 곳을 찾게 마련이다. 그래서 불황기에는 ‘가족’이 위력을 발휘한다. 불황으로 얼어붙은 문화계에도 예외 없이 ‘가족’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방송에서는 가족애를 강조한 프로그램이 인기다. KBS 주말드라마 ‘내 사랑 금지옥엽’은 그간 대부분 드라마에서 조연에 그쳤던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서 가족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이혼 후 20년간 자식만을 위해 희생과 인내로 살아온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사랑과 소중함을 전한다. 시청률 20%를 넘나들며 순항 중이다.

KBS는 내년 방송 콘셉트를 ‘가족’으로 정하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프로그램 편성을 늘릴 방침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와 ‘좋아서’는 가상 가족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짜 가족이지만 끊임없이 형제자매(‘패밀리가 떴다’)와 부녀(‘좋아서’)의 인연을 만들며 가족의 울타리를 쌓아간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가족 코드 드라마는 꾸준히 인기를 얻어 왔지만, 사람들은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가족을 다룬 문화 콘텐츠에서 강한 위안을 얻는다”며 “가족끼리 싸우고 힘들어하는 부정적인 면을 걷어낸 예능 프로그램의 가상 가족이나 드라마 속 끈끈한 가족을 보며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일종의 ‘가족 판타지’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계에도 가족이 대세다. 사랑하지만 소통하지 못했던 모녀를 통해 가족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연극 ‘잘자요, 엄마’는 인기에 힘입어 다음달까지 공연을 연장했다. 새해 첫 달 무대에 오를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은 어느 날 친정을 찾아온 딸이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2박3일을 담았다. 부성애를 그린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중장년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공연기획사 아트브릿지 신현길 대표는 “한국은 사회 안전망이 가족이다 보니 경제가 어려우면 가족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며 “연말인 데다 경제도 어렵다 보니 마당놀이나 가족 발레 등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 잘나간다”고 말했다.

올해 문학계에는 ‘어머니’가 부상했다. 지난달 출간된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빠른 속도로 독자를 파고들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지하철 역에서 실종된 뒤 가족들이 어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소소한 위로를 담은 소설가 공지영씨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지난봄 출간된 뒤 내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교보문고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아버지가 부상했다면, 올해는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밝혔다.

최근 싱글음반을 내놓은 가수 김종서는 타이틀곡 ‘아버지’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내 소중한 가장 오랜 친구 사랑하는 내 아버지” 등 가사에는 이 시대 고개 숙인 아버지를 북돋워주는 응원이 담겨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어려운 때일수록 가족 공동체가 힘을 발휘하는 경향은 외환위기 때도 나타났다 상황이 호전되면서 사라졌다”며 “한국 사회는 아직도 가족을 핵심으로 하고 주변은 변동 가능한 존재로 두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화계는 어려움이 닥치면 손쉽게 가족으로 회귀한다”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전통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보연·박종현·백소용 기자 byabl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