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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수사결과…3층 계단서 발화 8분 뒤 망루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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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화재 당시 상황 재구성
망루, 화염에 휩싸이기까지
1. 지난달 20일 화재 발생 약 5분 전인 오전 7시15분 촬영된 장면에서 농성자가 망루 오른쪽 4층 창문 밖으로 붉은색 통을 내밀어 액체(점선안)를 3∼4초간 뿌리고 있다.
2. 화재 발생 1분 전인 7시19분 찍힌 장면에는 망루 왼쪽 외벽 함석을 뜯어내려는 경찰 특공대원을 향해 망루 4층 계단 부근의 일부 농성자가 액체(점선안)를 약 30초 동안 아래로 뿌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3. 액체가 뿌려진 지 약 1분 뒤인 오전 7시20분쯤 망루 뒤쪽 4층 창문을 통해 불빛이 보이고 3초 뒤 뒤쪽 등 창문으로 조금 더 큰 불꽃이 보인 다음 7시20분23초 불꽃(점선안)이 망루 전체로 퍼지고 있다.
4. 이어 3, 4초 뒤 불똥이 떨어진 아래쪽에서 불길이 거세게 치솟아 오르고 있다.
1월20일 오전 7시19분. 용산 철거현장 내 남일당 건물 옥상에 설치된 망루의 외벽을 뜯어내려는 경찰 특공대 위로 흰 액체가 쏟아졌다. 망루 4층 계단 부근에 있던 농성자 일부가 시너를 끼얹은 것이다. 당시 망루 안에는 시너가 담긴 통과 화염병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약 30초간 뿌려진 액체로 망루 내 계단과 1층 바닥이 흥건히 젖었다. 1분가량 지난 7시20분 망루 3층 계단에서 갑자기 불이 붙었다. 화염병에서 비롯된 불씨는 시너로 옮아 붙으며 순식간에 대형 불길로 번졌다. 8분 뒤 날름거리는 화마 속에 망루는 무너져 내렸다.

9일 검찰이 밝힌 참사 순간의 모습이다. 검찰은 ‘칼라TV’, ‘사자후TV’ 등 현장에 있던 인터넷 방송사와 경찰이 찍은 동영상을 토대로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검찰은 농성자들이 19일 오후 5시30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경찰을 향해 화염병 200여개, 염산병 40여개, 골프공과 벽돌 수백개를 던졌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한강로 8차선 도로가 통제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20일 오전 6시30분 마침내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했다. ‘지상조’와 ‘옥상조’로 나뉜 채 지상조는 건물 계단으로, 옥상조는 컨테이너에 탄 채 옥상으로 향했다. 6시44분 지상조가 건물 3층을 장악한 가운데 옥상조 12명도 목적지에 도착했다.

10분 뒤 추가 옥상조 11명을 태운 두 번째 컨테이너가 모습을 드러냈다. 7명은 옥상에 내리고 4명은 컨테이너에 탄 채 망루 쪽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화염병이 날아오더니 대원들 옷에 불이 붙었다. 이들은 준비한 휴대용 소화기로 급히 불을 껐다.

특공대는 농성자들이 쇠파이프와 삼지창을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지는 혼란 속에서 건물 4층과 옥상, 망루 등에 있던 18명의 농성자를 검거했다. 그럴수록 남은 농성자들의 저항은 격렬해졌다. 농성자를 연행해 가느라 숫자가 줄어든 특공대는 7시10분 일단 망루 밖으로 후퇴했다.

7시15분 일부 농성자가 망루 창문으로 액체를 아예 통째 쏟아 붓는 광경이 목격됐다. 3분 뒤 16명의 특공대원이 다시 망루 안으로 들어갔다. 2차 진입 시도였다.

하지만 농성자가 특공대를 향해 던진 화염병이 시너에 닿으며 불길이 치솟았다. 소방관들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으나 참사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망루 붕괴 후 20여분이 지나 마지막까지 저항한 농성자 9명이 검거됐다. “사망자가 있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망루 잔해 때문에 당장 수색할 수 없었다. 자욱한 연기와 코를 찌르는 시너 냄새 속에 아침이 밝아왔다.

9시38분부터 12시50분까지 6구의 시신이 차례로 발견됐다.

철거민 농성자와 경찰의 대치는 처참한 결과만 남긴 채 비극으로 끝났다.

김태훈·김정필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