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운이란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 힘을 받아 몸 안의 우주를 깨운다. 우주를 움직이는 것이 도(道)라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기(氣)다. 굼실굼실, 능청능청, 유연한 몸짓 속에 우주와 하나가 되고 나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무예는 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충주호를 끼고 있는 넓은 들판, 중앙탑 아래에서 펼쳐지는 택견 수련은 장관이다. 어디선가 자라면서 본 것 같은, 생활 속에서 친근한 몸짓이다. 한국인의 성품과 닮은 그 몸짓, 그래서 택견은 우리 일상인에 숨어 있는 무에의 무의식을 일깨운다.
이제 지천(地天)의 시대. 땅과 어머니가 하늘과 아버지보다 더 대접을 받는 시대, 평화의 시대는 택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땅을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가는 성격을 바꾸는 것과 함께 문무(文武)도 서로를 바라보면서 반면교사 역할을 하는 소통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인류의 전쟁의 성격이 달라지고, 무기체계가 달라지고, 삶의 모습도 달라진 지금, 무예는 수양무예, 호신무예, 경기스포츠나 건강스포츠, 예술무예의 성격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무기를 가진 무예가 설 자리를 잃은 지금, 놀이의 성격이 강한 택견은 더더욱 빛을 발할 때가 된 것이다.
◇충주 택견전수관 앞뜰에서 벌어진 택견의 맞서기. |
충주시 중심가인 호암동(虎巖洞), 둘레가 4㎞에 이르는 넓은 호암지를 바라보면서 충주시 문화센터 한 쪽에 충주시 ‘택견전수관’이 있다. 입구에 ‘택견’이란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그 옛날 동네 어귀의 입석처럼 서 있었다. 2000여평의 대지에 300여평의 도장과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씨를 만났다. 그는 요즘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제자들도 양성해야 하는 관계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83년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만 해도 외로웠던 정씨는 이제 이수자와 전수생들만 해도 150여명에 달한다. 그를 거쳐 간 제자들은 전국에 50만∼60만명에 이른다. 현재 16개 시도에 지부가 있다.
◇태견 3대인 송덕기, 신한승, 정경화씨가 수련 후 한자리에 모였다. |
“종래의 ‘본때 뵈기 택견’은 발중심으로 8마당이지만, ‘별걸이’는 손중심으로 8마당입니다. 전자가 ‘지(地)중심’이라면 후자는 ‘천(天)중심’입니다. 별걸이는 좀 어렵기는 하지만 종래의 수비중심의 택견을 공격중심으로 바꾼 것입니다.” 별걸이를 복원하면서 택견의 외유내강(外柔內剛)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역으로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별걸이는 마치 암수를 만나야 성인이 되는 것처럼 택견의 진정한 짝을 찾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 2007년 충주세계무술축제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는 태견. |
택견은 크게 서기택견과 결연택견(결연수)으로 나뉜다. 결연택견은 바로 싸움수를 말한다. 택견의 기초와 기술은 품밟기(보법)와 활갯짓, 그리고 손발기술로 구성된다. 삼각지점을 번갈아 오가는 품밟기는 3박자의 한국 고유의 리듬을 타고 있다. 이는 발을 철저하게 보법으로만 이용하며 발가락에 중심을 두고 나아가며 정권을 치는 공격적인 권투와 달리, 발을 주무기로 사용하면서도 발뒤꿈치에 중심을 두며 활갯짓을 하며 상대를 교란하며 탄력을 얻는 수비형의 기본동작이다. 손과 발로 하는 모든 공격과 방어는 활갯짓에서 나온다. 제치고, 홰치고, 돌리기, 활갯짓의 부드러운 곡선과 품밟기의 독특한 걸음법이 모여 택견의 기본동작이 만들어진다. 품밟기를 이용해 상대의 중심을 흐트러뜨린 다음 차거나 걸어서 먼저 쓰러뜨리는 방법으로 승부를 낸다.
◇정경화씨가 손심내기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
택견은 조선조 말까지만 해도 씨름과 더불어 민속놀이 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은 평화민족이어서 그런지 발을 사용하는 무예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손은 보조인 것이다. 여기에 탈춤을 보태면 영락없는 삼총사이다. 이들 삼자는 하부구조와 무의식에서 통하고 있다.
택견과 씨름을 비교해 보자. 택견의 낚시걸이는 씨름의 밭다리이고, 안낚걸이는 안다리이다. 덧걸이는 덧걸이로 이름도 같고, 두잽이는 뒤집기이다. 오금잽이는 뒷무릎치기이고, 딴죽은 차돌리기이다. 택견과 탈춤을 비교하면 택견의 어리대고 빗장걸이는 탈춤의 외사위이고, 품밟기는 오금펴기이다. 그래서 택견은 샅바 없는 씨름이고, 공격하지 않는 탈춤이다. 이들은 모두 3박자이다. 천지인 3박자는 한민족의 DNA가 되어 이렇게 무술의 동작에도 스며 있는 것이다.
◇ 택견의 째차기 기술, 맨 앞에서 무형문화재 정경화씨가 시범을 보이고 있다. |
택견의 이름도 다양하다. 태껸, 탁견, 탁견희, 덕건이, 각희 등이다. 현재 무형문화재 지정이름은 택견이다. 그래서 택견으로 통일하는 것이 옳다. 놀이성이 짙은 택견, 맨손으로 하는 무예였던 택견은 무예의 갈 길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평화의 민족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었던 가장 평화적이고 신사적인 놀이성 무예였던가. 택견은 어떤 무예보다 민족의 무의식적에서 자라나고 있는 무예이고, 한민족의 ‘어머니 무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춤과 씨름과 혈연성을 가지고 있는 택견의 앞날은 밝다. 정경화 인간문화재는 충주시 택견전수관을 ‘택견원’이라고 부른다. 세계 택견의 본부라는 뜻에서다.
일제 강점기 ‘제국신문’ 주재(主宰)를 지냈던 최영년(崔永年)이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1925년 4월 25일) 유희(遊戱:놀이)편에 ‘탁견희(托肩戱)’는 이렇게 소개된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
“옛 풍속에 각술(脚術)이라는 것이 있는데,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차서 거꾸러뜨린다. 세 가지 법이 있는데 최하는 다리를 차고, 잘하는 자는 어깨를 차고, 비각술(飛脚術)이 있는 자는 상투에 떨어진다. 이것으로 혹은 원수도 갚고, 혹은 사랑하는 여자를 내기하여 빼앗는다. 법관으로부터 금하기 때문에 지금은 이런 작난이 없다. 이것을 탁견이라 한다.”
이 글 뒤에 한시가 붙어 있다.
‘백 가지 기술 신통한 비각술/가볍게 상투와 비녀를 스쳐 지난다/꽃 때문에 싸우는 것도 풍류의 성격/한번 초선(貂蟬)을 빼앗으면 의기양양하다(百技神通飛脚術/輕輕掠過琦簪高/投花自是風流性/一奪貂蟬意氣豪)’.
박정진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