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추부길 통해 구명로비 시도 파장… '박연차 돈' 與 실세까지 유입됐나

노건평 “박연차도 보호”… 추씨, 실제 與인사 접촉
박연차 ‘세무조사 무마’ 2억의 거액 건넸을수도
적막에 싸인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관련 수사의 핵심인물로 부상한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가 5일 인적 없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노건평씨가 지난해 추부길(구속)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만나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과 가족, 친인척 그리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구명’을 부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박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껏 박씨는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와 관련해 2억원만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훨씬 거액을 퍼부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돈 일부가 현 정권 실세들에게 흘러들어갔다면 그 파괴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커질 전망이다.

◆노건평·추부길 ‘핫라인’ 가동?=5일 여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노씨는 추씨를 찾아와 “대통령 ‘패밀리’와 박씨는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를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검찰에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상 청와대, 검찰을 로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추씨는 이를 당시 ‘실세’로 알려진 친이(親李)계 여권 인사에게 전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인사는 그냥 “지금 제정신이냐”고 꾸짖는 정도의 반응만 보였다고 주장한다.

추씨는 전부터 노씨와 친분이 있다. 지난해 말 추씨는 “나와 노씨 사이에 ‘핫라인’이 있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현 정부와 참여정부 인사들 간에 무슨 문제가 생길 때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해결을 모색하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노씨는 평생지기인 박씨의 태광실업이 국세청 세무조사로 휘청거리고 자신 또한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매각 비리로 검찰 내사를 받는 상황에서 추씨에게 의존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미 청와대를 떠난 추씨는 나름대로 여기저기 뛰었지만 노씨에게 ‘결정적’ 도움은 주지 못했다.

◆현 정권 실세들에 ‘불똥’ 튀나=그간 검찰은 “추씨가 실제로 세무조사나 검찰 수사를 막지 못한 만큼 실패한 로비에 불과하다”고 단정해 왔다. 하지만 추씨가 여권 핵심 실세와 직접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 수사가 현 정권 인사들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검찰에 따르면 노씨가 추씨와 만나던 것과 비슷한 시기에 박씨도 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대표를 내세워 추씨와 접촉했다. 박씨는 “세무조사와 검찰 고발을 막아 달라”며 2억원을 건넸고, 이를 받은 추씨는 “한번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노씨와 박씨가 각자 따로 뛰었는지, 미리 계획을 짜 함께 움직였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2억원보다는 훨씬 큰 돈이 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큰손’으로 알려진 박씨가 태광실업 명운이 걸린 세무조사를 막는 데 겨우 2억원만 쓰진 않았을 것이란 관측은 전부터 무성했다. 추씨에게 흘러간 돈이 2억원이 아니고 5억원 이상이라거나, 추씨 말고 다른 로비 ‘루트’가 활용됐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됐다.

일각에선 추씨 행보가 청와대에 포착됐을 가능성도 거론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 박씨 관련 보고를 받은 뒤 “수사하다 보면 누군가 (박씨를) 봐달라고 민원할 수도 있는데 개의치 말고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여권 내부에 박씨를 구명하려는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