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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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십니까] 영리 의료법인 허용

서비스산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영리의료법인 허용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민간자본 투자를 허용해 의료 서비스를 고급화하자는 취지인데, 중소병원 줄도산과 의료비 증가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영리의료법인(영리병원)이란 외부의 자본 투자가 가능하고, 병원에서 번 돈을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도 투자할 수 있는 민간병원을 말한다. 이에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환자 위한 병원 간 경쟁 촉발하는 계기
이기효 인제대 보건대학원장


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설립,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는 것은 우리 의료의 발전과 선진화를 위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의료인만 영리병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제한돼 일반 국민의 투자에 의한 재원 조달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병원은 투자재원 조달이 어려워 과다한 부채 부담에 허덕이며 영세성을 못 면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원하는 국민의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영리법인 허용은 다수의 투자자가 힘을 모은 ‘시민주주’ 병원을 가능케 해 기존의 영세한 개인병원이 자본을 확충해 회사 형태의 경쟁력 있는 병원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일반 국민 및 회사가 의료서비스산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지금까지의 독과점 상태를 벗어나 소비자를 향한 진정한 경쟁이 촉발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공급자 사이의 경쟁이 소비자 편익을 높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영리의료법인의 등장은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더욱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병원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경쟁적 산업구조를 만들게 될 것이다.

영리법인 허용은 단지 병원 개설 주체에 일반 회사를 추가하는 내용의 개혁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체계를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과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 건강보험체계를 공고하게 유지, 발전시키면서 그 틀 안에서 영리법인을 도입하면 진료비 폭등이나 의료 양극화, 건강보험의 붕괴 문제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의료시장 개방 앞두고 체질개선 기대
김진왕 베스트웰 성형외과원장 세계성형외과학회 명예고문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도입에 따른 문제를 줄일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비중을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와 더불어 다각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시점까지 정부의 영리의료법인 실체는 발표되지 않고 있지만 의료서비스산업육성위원회에서 자본조달 방식, 이익 배분, 과실 배당 등 영리법인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검토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영리의료법인 허용과 관련해 국내에서 찬반 논란이 많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일본에서도 논쟁이 많았다. 현재 우리와 같이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의료계와 후생노동성의 반대가 주요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후생노동성의 반대에도 경제계와 규제개혁위원회의 개방수용 정책으로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혼자서 꾸는 꿈은 그저 꿈일 뿐이나 여럿이서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우리의 의료 서비스를 세계적인 표준에 맞추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며, 영리법인 허용 문제도 세계적인 표준에 맞추어 나가되 국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의료시장 개방 시 그에 따른 충격과 부작용도 우려되는 만큼 우리는 영리법인 허용이 우리나라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해 의료계의 체질 변화를 유도해야 하고, 이에 따른 정책 개선 효과를 마련하는 데 충분히 논의돼야 할 것이다.

병원 간 경쟁 커질수록 의료비만 폭등
임 준 가천의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화제다. 주무 부처 장관도 반대하는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주장한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야당 의원에게 한 발언 때문이다. 장관은 영리의료법인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한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해 “비싸면 환자가 안 갈 것 아니냐”는 발언을 해서 빈축을 사고 있다.

본래 의료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서 시장에서 마음대로 사고팔게 내버려둘 경우 시장 실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급자와 소비자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과 이를 전제로 한 시장의 성립이 불가능하다. 비싼 옷 가게는 가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병원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문제를 무리하게 풀려고 하면 시장 실패가 발생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에서 수천만명의 무보험자가 존재하고, 살인적인 의료비 부담으로 중산층이 몰락하는 현실은 시장 실패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일반적인 시장에서 가격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떨어지지만 보건의료는 반대다. 경쟁이 커질수록 의료비가 폭등한다. 공급자 독점 시장이기 때문이다. 경쟁을 제한하고 사회적 규제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영리의료법인은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필수진료를 줄이기 때문에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는 영리의료법인 도입 등 의료 민영화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다. 이미 의료 민영화가 너무 심하게 이루어져서 국민 건강권이 위협을 받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도 시간이 부족하다.

정부, 상업화된 의료계 규제해야 될 때
김의동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집행위원장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돼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유지한다는 정부의 말은 상식에도 닿지 않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는 것은 일반인도 병원으로 돈벌이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한다는 말인데, 돈벌이는 하되 가격은 정해놓은 것을 따르라는 것이 이치에 맞는가. 아예 장사하지 말라면 모를까 장사는 하라고 해놓고 건강보험공단이 정해 놓은 가격을 일률적으로 따르라면 결국 의료의 질을 낮추어서 이윤을 얻으라는 것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어디 있는가.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의료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라지만 의료 분야 특유의 고도 전문성으로 인해 의료소비자(환자)의 정보로는 의료 서비스의 질과 정당한 가격을 평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지 않은 지금도 소위 아주 잘되는 병원 중에는 진료의 질이 정말 한심한 수준이지만 덤핑이나 과잉진료, 과장광고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병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의료 분야 역시 정부가 할 일이 있고 민간이 할 일이 있으며, 시장논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고 공공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 의료공급자의 선발과 교육, 양성과 관리, 의료기관의 개설과 유지, 병상의 공급과 의료기관 공급, 보험제도 등 많은 부분 중에서 사실 정부와 공공이 차지하는 역할은 건강보험을 빼면 거의 전무에 가깝다. 지금의 문제는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고 공공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상업화된 의료를 규제하지 못한 것에 있지, 의료계에 시장논리가 부족해서 그런 건 결단코 아니라는 것이다.

정리=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