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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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IT산업은 한물갔나

10여년만에 산업 성숙기로 진입

업계 ‘정부 관심 전같지 않아’ 우려
권영선 KAIST 교수·경제학
우리나라에서 정보기술(IT)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개명한 시기 전후라고 할 수 있다. 이용료가 매우 비싸서 일반인의 소비대상이 아니었던 이동전화가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의 생활기기로 등장한 것이 바로 90년대 중후반이다.

2000년대 우리 경제에서 IT산업 성장률이 전체 경제성장률보다 두 배 이상 높았고, 그 결과 IT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한때 50%를 초과하기도 했다. 근래 좀 하락했으나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의 3분의 1 이상이 IT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즉, 녹색성장이 사회경제적 화두로 등장하면서 IT산업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IT산업은 여전히 우리 경제를 지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으나, IT산업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관심이 전과 같지 않다고 IT산업의 생태계에 속한 사람들은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IT산업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위축된 것과 관련해 몇 가지 원인을 짚어 보면 첫째, IT가 신산업을 탄생시킨 이후 불과 10여년 만에 유무선 통신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초고속인터넷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무선통신기술이 진화하고 있지만, 신규 서비스의 창출이 아니고 기존 서비스의 진화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신규 고용 창출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고 그만큼 정책적 관심사에서 멀어진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신규 산업 생성 초기에 집중되고 해당 산업이 성숙단계에 진입해 민간부문의 자체 역량으로 진화와 발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되면 지원이 축소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신생산업에 제한된 자원을 집중해서 신규 산업을 키워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IT는 이제 IT산업의 기반기술에 그치지 않고 타 산업의 기반기술로 활용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IT산업 자체보다는 타 산업에서 어떻게 IT를 이용할 것인가에 정책적 관심이 보다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방송통신 융합이고, 일상에서 찾기 쉬운 사례는 커피전문점이나 도넛가계에서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결합해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지원이 IT산업 자체에서 융합산업 분야로 전환돼 가는 것도 어쩌면 IT업계 측면에서는 아쉬울 수 있으나 불가피한 변화인 것이다.

셋째로는 IT가 타 산업에서 진행되는 고용대체 현상의 배후에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격제어 및 측정, 생산자동화, 사무자동화 등의 IT를 적용해 생산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일자리 감소가 발생한다. IT의 확산이 빠르다 보니 이제는 일자리 감소뿐만 아니라 설치한 지 얼마 안 되는 기계가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바뀌기도 한다. 기차표의 인터넷 발권이 가능해지고 소형무선단말기로 검표가 가능해지면서 서울역에 고철덩어리로 남아 있는 검표 및 집표용 기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개방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고 국제경쟁을 회피해서는 생존하기 어렵다. 따라서 비용 절감을 위해 IT가 일자리 감소를 유발하기는 하나 IT의 확대 이용을 회피할 수는 없는 만큼, 고통스럽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IT를 이용한 산업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신기술은 신산업을 배태했지만 동시에 기존 산업의 쇠퇴를 수반했고, 역사의 진보에 빠르게 순응한 국가와 민족이 번성했음을 유념해야 한다.

아마도 정보통신 생태계에 속한 사람이 우려하는 것은 소외감에 따른 서운함보다도, 이제 갓 청년기로 접어들고 있는 IT산업을 조로한 산업으로 오해해 최소한 몇십년은 국부 창출에 크게 기여할 산업의 우선순위를 정부가 너무 일찍 하향조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일 것이다. 정부의 IT산업에 대한 관심이 식었기보다는 환경변화에 따라서 IT산업의 정책적 우선순위가 미조정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권영선 KAIST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