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에 와 수행을 하면서 좋은 경지를 만났습니다. 한 빛 속으로 모든 세계가 사라지면서 몸뚱이도 사라지더군요. 50여년을 수행하기 위해 선방을 돌아다녔는데 정진해 보면 피로감이 전혀 없는 선원입니다. 다른 구참 스님들도 그리 느낀다니 역시 지리산 기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하안거 결제 전날인 8일 오후 화엄사 선등선원(禪燈禪院)에서 만난 선원장 현산(玄山) 스님(사진)에게선 평생 수행에 매진해 온 선사의 준엄함과 정갈함이 느껴졌다. 8년째 선등선원을 이끌어온 노스님은 열아홉에 출가해 예순여섯 지금까지 무려 100번이나 안거(安居)를 하며 참선수행에 매진해 왔다.
깨달음에 평생을 바친 스님은 “세상은 덧없고 몸뚱이는 한량없이 덧없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게 닥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어제 한 스님이 아침공양을 한 뒤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스님도 그럴진대, 하물며 일반 인간은 각종 사고와 병은 물론이고 재앙과 병듦이 어떻게 닥칠지 모를 일이에요. 전직 대통령도 구속되느냐 마느냐 하는 말세일수록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내 자리를 바로 보는 참선공부를 부지런히 해야죠.”
스님은 인간의 몸은 잠깐 빌려 입은 옷일 뿐 ‘참나’가 아님을 깨닫는 게 바로 선(禪)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이 몸뚱이를 ‘나’라고 착각합니다. 한꺼풀만 벗기면 피와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참선을 하고 나면 생각이 깨끗해지면서 현상에 속지 않아요.”
석 달 간 줄곧 앉아서 홀로 화두에만 매달리는 안거 방식의 효과에 대해서 물었다. 현산 스님은 ‘앉는 습관’의 힘을 이야기했다. “앉는다는 것(좌선)은 일체의 현상세계에 머물러 있는 마음을 깨고 깨끗한 본래 마음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앉으나 서나 누우나 어느 때든지 화두를 챙기는 것이 참선입니다. 움직여서 무언가를 하는 데 화두를 빼앗기지 않도록 초심에는 앉는 힘을 길러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산 스님은 100일 안거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박사와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도 얼마나 노력합니까. 신묘한 지혜와 마음을 찾는 데 ‘100 안거’는 오히려 적은 시간이죠.”
그는 우리처럼 선 수행을 많이 하는 나라, 선승이 많이 나오고 선방이 많은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다고 했다. 하지만 수십년 수행해온 선사도 거듭해야 하는 참선수행이 일반인에게는 너무 고된 길이 아닐까.
스님은 “참선을 하면 행복하고 건강해진다”면서 “누가 나를 비방하고 헐뜯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밝은 지혜를 찾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깨끗하고 고요한 상태가 오지 않으면 화두를 잘못 든 것”이라고 했다.
자리를 털기 전 “선등선원의 가풍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일순간의 침묵 끝에 역으로 질문이 날아든다. “알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 그러자 호방한 웃음이 대답으로 돌아온다. “모르는 것을 바로 하는 것이 가풍입니다.”
화엄사=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