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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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남자

그저 보고만 있어도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자가 있다. 작게 내쉬는 한숨에도 가슴이 철렁하고, 힘든 일, 어려운 일 따위는 한 터럭도 겪게 하고 싶지 않고, 우울한 표정에 웃음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게 만드는 그런 여자.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자의 마음에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의 남자가 있다. 이른바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남자다.

여자의 모성본능, 진실 혹은 환상

남자가 종족보존의 욕구를 가지고 있듯이 여자라면 누구나 모성본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강도와 농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자들은 모성본능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아이를 가질 수도, 낳을 수도 없는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는 남자로써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의 모성 본능은 단지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자기희생적 애정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여있기에 조금 광범위하다. 비록 자식이 아닐지라도 애정결핍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절대적 위치 혹은 매력을 가진 남자 앞에서 여자의 모성은 활짝 열린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잃어버린 채 미치광이처럼 폭주하는 연산군을 치마폭으로나마 품어 낸 것은 피보다 진하다는 가족이 아니라 기생 출신의 장녹수였다. 궁에 들어오기 전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장녹수의 경험은 어머니의 애정에 목마른 연산군의 광기어린 폭주를 감당할 수 있던 뒷심이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신분상승이라는 더 크고 강력한 욕망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이뤄줄 수 있는 절대자, 왕 앞에서 그녀는 수많은 유혹의 기술 중에서 모성본능을 이용한 것이다.
 
궁극의 누나본능, 의남매

결혼 적정 나이가 계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요즘, 아내와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잔뜩 가지고 있되 아직 미혼인 여자들은 모성 본능을 대체하는 새로운 단어와 감정을 찾아냈다. 바로 누나본능이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자주 남용되는 의남매, 이것은 누나들이 매력적이지만 아직 미숙한 남자를 연인으로 만들기 위한 음흉한 작업의 궁극이다. 지금은 각기 다른 연분을 만나 잘 살고 있지만 한때 홍콩을 뒤흔든 대표적인 연상연하 왕비, 사정봉 커플(두 사람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봉비련’이라고 불렸다.)도 시작은 의남매였다. 막 데뷔한 스무 살 남짓한 사정봉은 왕비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의남매를 거쳐 공식 연인을 선언했다. 대만을 대표했던 연상연하 커플 주유민과 서희원도 시작은 의남매였다. 

팬들은 줄기차게 이 남매의 순수성을 의심했지만 상당 기간 남매답게 지냈던 두 사람도 결국엔 커플이 되었다. 아쉽거나 혹은 기쁘게도 해피엔딩이 되진 않아 지금은 헤어진 상태이지만, 여전히 남매다운 사이를 유지한다고 하니 보험 같은 관계로도 보인다. 반대로 애정 표현에 훨씬 적극적이고 거침이 없는 서구에서는 ‘남매 같은 사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 전략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남매가 아닌 모자 사이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나이 차이가 나는 데미 무어와 애쉬튼 커쳐는 남들이 놀라건 말건 당당히 결혼에 골인했다.

여자의 로망, 너는 펫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가 한국판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결혼 못하는 남자>를 여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딱 대칭점을 이루는 드라마가 있다면 바로 <너는 펫>이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남자를 남자가 아닌 애완동물로 거두는 여자의 이야기는 은밀한 로망을 고스란히 실현시켜 주면서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인 모습을 건전하고 면면하게 보여준다. <너는 펫>의 여주인공은 고학력, 고신장, 고수입이라는 우월한 조건의 소유자이지만 너무 우월한 나머지 결혼에 실패하여 낙담하던 중, 애교 만점에 귀엽고, 몸매와 얼굴까지 착한 남자 아이를 만난다. 어른이 아니기에 어른인 척 하지 않고, 남자이기에 가끔 남자인 척 하지만 귀여운 수준에 불과한 펫 역할은 당시 막 스무살이 된 마쓰모토 준이 열연했다. 조막만한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강아지처럼 복실 거리는 머리에 연체동물처럼 유연한 몸으로 현대무용을 하는 소년 마쓰모토 준은 일본을 넘어 외롭고 쓸쓸한 아시아 누나들의 딱딱해진 마음을 순식간에 무장해제 시켰다.  

마쓰모토 준의 뒤를 있는 쟈니즈 후배로는 캇툰의 아카니시 진과 카메나시 카즈야가 있다.이들은 여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남성 아이돌을 전문적으로 키워내는 쟈니즈 출신답게 비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한국의 누나 팬을 거느리고 있다. 아카니시 진이 <아네고>라는 드라마에서 똑 부러진 11년차 선배를 좋아하는 어리 버리 하지만 잘 생긴 신입사원을 연기하며 데뷔 전부터 누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리쉬함 뒤에 숨어있는 웃어도 눈물이 묻어나올 것 같은 묘하게 애수어린 촉촉한 표정의 카메나시 카즈야는 연상의 여자의 마음을 안 밖으로 완벽하게 훔쳤다.
 
상대방에게 매력을 발휘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상대방의 매력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을 때 여자의 행동은 훨씬 과감하고 대범해진다. 그리고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이것 또한 아마도 남자들이 바라는 모성본능 중 한 가지 행동이자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감정은 여자의 눈에 콩깍지가 쓰였거나, 아니면 제대로 어여쁜 외모와 확실하게 어린 나이가 아니면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모성이 아무리 여자의 본능이라 해도 실제 자신의 자식이 아닌 이상 아무 남자에게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꽃미남 애호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