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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범구 정치부 차장 |
지난달 21일 검찰총장·국세청장 인사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중도강화, 중도실용론’, 서민 행보와 정책, 한반도대운하 포기 등 ‘변신’ 시도가 이어졌다. 연고(緣故)와 배제, 일방과 독주, 불통과 고집 등 예전 이미지 및 스타일과는 상반되는 흐름이다.
국민은 일단 이 대통령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대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30% 안팎의 박스권에 갇혀 1년 넘게 정체현상을 보여왔다. 국민 다수의 불만을 넘은 무관심 탓이다. 뭘 해도 쳐다보지 않으면 허사다. 이 대통령으로선 이번에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일 잭 웨더퍼드가 쓴 ‘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의 서문을 빌려 중도실용의 낙관론을 피력했다. 서문은 칭기즈칸이 기술자를 중시해 적국의 기술을 빠르게 흡수한 점, 종교·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 점 등으로 그의 세계 정복사를 풀이했다. 그는 “칭기즈칸이 애초 세계 정복을 계획한 게 아니다. 반기 드는 이웃 부족을 진압해 필요한 걸 취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며 “이 대통령도 중도실용의 길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인사와 정치라는 정작 어려운 과제가 남아서다. 장터에서 어묵을 사 먹고 서민과 어울린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락시장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건네며 눈물 흘렸던 이 대통령이다. 대운하는 어차피 정리할 거였다. 권력기관장 인선은 평가가 분분하다.
인사와 정치는 통 큰 리더십을 요구한다. 정치적 모험을 각오하고 현실적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진정성’을 판가름하는 시험대인 것이다. 중도실용의 성패가 달린 셈이다. 인사는 ‘내 편’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지연·학연 편중과 부자의 낙인을 지우는 게 지름길이다. 총리와 대통령실장을 포함한 내각과 청와대의 대규모 물갈이가 첫걸음이다. 이념·지역·계층 통합의 인물로 대체하는 게 최선책이다. 국정 효율성·추진력 저하 등이 걸리겠지만, 두고 볼 일이다. 경계해야 할 대목은 탕평과 정치공학적 ‘충청·호남 총리론’을 혼동하는 것이다. 정치공학과 진정성은 물과 기름이다.
정치, 특히 ‘여의도 정치’는 ‘네 편’을 품는 게 요체다. 협치가 지향점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는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다. 해묵은 경선 앙금을 터는 게 우선이다. 계파 인정과 권력 분점도 불사해야 한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 공생하면 레임덕은 기우일 것이다.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은 “대통령이 잘하면 2인자는 순종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협치 대상이다. 독재·하야 소리까지 들었던 이 대통령으로선 싫은 일이다. 그러나 국회가 갈등·분열의 현장인 만큼, 피해 가선 안 된다. 정적과 부단히 소통했던 정조의 ‘서찰정치’,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전화정치’가 회자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무엇보다 여야 의원과 자주 만나는 게 중요하다. 밥 먹고 술도 하다 보면 가까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한나라당 중진은 얼마 전 기자들에게 원내대표 경선의 뒷얘기를 전했다. 박 전 대표 측근 의원이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박 전 대표의 뜻”이라며 황우여, 최경환 의원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 사람과 폭탄주라도 한잔 했어야 마음의 빚이라도 느끼지”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국민은 또 한편으로 벼르고 있을지 모른다. 국민은 분명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여당이 4월 재보선 완패 후 한 일이라곤 사무총장을 바꾼 것뿐이다. 요란했던 쇄신위는 우물쭈물하고, 사퇴 압력을 받았던 박희태 대표는 10월 재보선을 노리고 있다. 인적 쇄신과 정치 집중이 신통치 않으면 거센 역풍이 우려되는 풍경이다. 이 대통령 메시지가 꼬리를 물면서 국민의 눈높이는 올라가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헤어진 연인은 미련이 남으면 한번쯤 재결합을 꾀한다. 그러다 안 되면 영영 갈라서게 된다. 이 대통령과 국민도 그럴 수 있다.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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