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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기 단국대교수·노동경제학 |
비정규직법 개정 실패로 고용계약이 해지돼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의 숫자에 대해서 여야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매달 3만∼5만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연간 70만∼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의 주장을 유언비어라면서 크게 반발했던 노동계도 최근에는 태도를 바꾸어 매달 3만2000명 정도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을 연장하거나 법 적용이라도 유예하지 않으면 고용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진작 제기됐음에도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1차적 이유는 민주당 등 야당이 법 개정에 강력히 반대한 것이고 여당도 무리수를 두면서 법안을 처리하지 않은 데 있다. 그렇다면 야당은 왜 이렇게 반대하고 여당은 총대를 메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비정규직법 개정을 반대하는 노동계의 힘에 여야 모두 휘둘린 데 있다.
비정규직법 개정 실패로 인해 정치권에 돌아올 비난이 훤히 보이는데도 여야가 협상에 실패한 이유는 리더십이 흔들리는 데 있다. 여당은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 생각하고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회피하는 자세를 보였고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노동계와 야당을 설득하지 못했다. 야당은 노동계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비정규직법 개정 합의에 따른 정치적 위험을 부담하기보다는 사회적 합의 등을 내세우면서 그 부담을 회피했다.
노동계도 비정규직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직장을 잃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절박한 사정은 인정하면서도 긴급 처방을 외면한 채 비타협적인 자세를 보였다. 여기에도 노동계의 리더십 불안문제가 깔려 있다. 노동계는 좌파 단체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법 개정을 저지하면서 선명성을 지키는 것이 유리하며 법 개정을 하지 못해 고용 대란이 현실로 대두되면 그 책임을 정부에 돌리는 것이 낫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여야는 물론 노동계가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이 문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법 개정이 실패로 돌아간 첫날만 하더라도 여당은 법안 상정 자체를 완강하게 거부한 야당에 시위라도 하듯 법안을 기습 상정했다. 이제는 비정규직법 개정 실패로 야기된 감정 충돌은 자제하고 고용 대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근본 해법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할 때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가 비정규직법 적용 유예기간을 1년 6개월로 하기로 합의했는데 다른 야당도 한시라도 빨리 합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근본 처방을 마련하기 위해 한시 기구로 국회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강자인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부문의 고용안정 유지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법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의 보호뿐 아니라 사회적 강자의 과도한 기득권 문제를 견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하거나 ‘공정노동법’의 도입 등으로 대체입법을 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과의 차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와 고용관행을 노사 당사자가 스스로 개선하도록 강력하게 유인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의 사용자뿐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끌어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교수·노동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