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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전장 누비는 '미래 병기' 전투 로봇

건물 파괴·폭탄 제거… 팔레스타인·이라크서 ‘임무수행’
◇팔레스타인 예민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원격조종 로봇 불도저에 돌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도시 나블루스에 거대한 불도저가 들이닥쳤다. 이스라엘군 소속 D9 불도저에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았다. 원거리에서 무선조종되는 이 불도저는 거침없이 휘젓고 다녔고, 마을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돼 버렸다. 팔레스타인 주민이 돌을 던지며 저항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자동소총과 로봇 팔로 무장한 로봇을 인간이 당할 재간은 없었다. 말 그대로 ‘인간과 로봇의 대결’이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소속 로봇 탈론이 도로매설폭탄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 이라크 주둔 미군 행렬이 바그다드로 향하는 도로 한가운데 멈춰섰다. 도로에 매설된 급조폭발물(IED)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린 병사 한 명이 여행가방 크기의 로봇 ‘탈론’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원격조종되는 탈론은 기계팔을 이용해 폭탄 해체를 시도했다. 그때 갑자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IED가 폭발했다. 충격으로 탈론이 저만치 날아갔지만, 미군은 개의치 않았다. 인명피해는 없었고 탈론은 수리하면 그만이었다.

입는 로봇 XOS.
바야흐로 로봇 군비경쟁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공상과학소설 속에서나 상상했던 로봇들의 전투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로봇의 임무도 정찰과 전투, 보급, 부상자 후송까지 점점 확대되고 있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최근 “로봇이 전쟁의 양상과 판도를 바꾸고 있다”면서 “현대전은 로봇전”이라고 보도했다.

◆활약 커지는 로봇=가장 많은 전투 로봇을 보유하고 현장에 투입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군이 이라크전을 시작한 2003년만 해도 리퍼와 프레데터 같은 무인 공격기가 전투 로봇의 주종이었다. 지상에 투입된 로봇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상 로봇이 1만2000대가 넘는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투입된 로봇도 6000∼1만2000대로 추산된다.

수많은 로봇 가운데 활약이 두드러지는 로봇은 탈론이다. 다목적 로봇 탈론은 IED 제거뿐만 아니라 전투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자동소총이 탑재된 탈론은 공격의 첨병으로 적진에 뛰어든다. 공격을 하는 와중에 4개의 카메라로 적진을 찍어 후방에 전송한다.

부상자 후송을 위해 개발 중인 베어 로봇.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장 지휘관의 입장에서 탈론과 같은 로봇은 최고의 부하다. 가라는 곳은 어디든 가고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주저하지 않는다. 아군 인명피해는 최소화하고 적군 피해는 극대화한다. 지금까지 병사를 대신해 IED를 제거하다 파괴된 탈론은 1600대. 군사전문가 해럴드 커밍스는 “탈론 한 대당 평균 2명의 미군 목숨을 구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미군 내 탈론 수요는 급증했다. 2001∼07년 1000대였던 탈론 수요는 2008년 2000대로 두 배 늘었다.

로봇의 효용성이 실전에서 입증되면서 미군은 보다 다양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총탄이 날아드는 격전지에서 부상병을 후송할 수 있는 ‘베어’ 로봇은 3∼5년 내 대량 생산될 전망이다. 산악지대나 자갈밭과 같이 바퀴 달린 이동체가 갈 수 없는 곳에 물자를 전달하는 견마형 군수 로봇도 개발 중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전투력을 로봇에 버금가도록 만들어주는 ‘입는 로봇’ 개발도 한창이다. 입는 로봇 ‘XOS’나 ‘헐크’는 병사들이 90㎏이 넘는 군장을 메고 16㎞의 속도로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해준다.

◆로봇 군비 경쟁=미 육·해·공군은 경쟁적으로 차세대 전투로봇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2020년까지 전력의 30%를 로봇에 의존할 계획으로 알려진 미 육군은 2300억달러(약 317조원)를 투입해 2015년까지 미래전장시스템(FCS)을 도입할 계획이다. 공군과 해군에도 2010년 로봇 관련 예산이 10억∼20억달러 투입될 예정이다. 전투 로봇 개발·활용에 대한 의지는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서도 변함이 없다. 오바마 정부는 재래식 무기에 드는 비용은 감축하는 대신 로봇 관련 예산은 증액시켰다.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개발 중인 빅도그 로봇.
다른 나라도 로봇 군비경쟁에 본격 뛰어들고 있다. 미국 외에도 전투 로봇을 개발하는 국가는 40여개국에 달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국 가운데 전투 로봇을 개발하지 않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스라엘은 최근 전장을 누비는 정찰용 로봇뱀을 개발해 시선을 끌었고, 한국도 비무장지대(DMZ) 등에 설치할 자동발사 소총을 개발한 상태다. 로봇의 활용은 국가를 넘어 무장단체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는 무인공격기 4대를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습하기도 했다.

◆전투 로봇 피해=전투에 참가하는 로봇이 많아지면서 부작용도 생겨났다. 오작동과 오폭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것. 파키스탄 국경지대에 투입된 미군 무인폭격기 리퍼는 2006년 이후 테러조직 알 카에다 요원 1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같은 기간 리퍼의 오폭으로 사망한 민간인 수가 600명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이라크에 투입된 지상 전투 로봇 스워드 3대가 본토로 소환됐다. 스워드에 탑재된 총신이 오작동을 일으켜 아무 곳이나 총구를 겨냥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