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이수경씨는 “선험적인 생각 없이 시각을 통해 자유롭게 즐기고 볼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원 기자 |
이 미술관에서 내년 5월 5일에서 6월 26일까지 이씨의 작품이 걸린다.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일 뿐만 아니라 무명에 가까운 이씨가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아슈드 시에주 미술관에서 이씨를 주목한 것은 ‘독특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미술 영역에서도 점차 위축되고 있는 분야인 추상회화를 일관성 있게 해오면서, 20세기 중반 이후 거의 명맥이 끊겼던 표현추상주의를 잘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씨는 “독일이나 벨기에는 추상을 좋아하고 그림을 거리낌없이 사는 컬렉터가 많지만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사진과 설치작품이 강세였다”며 “프랑스에서 ‘죽었다’고 표현하던 회화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전시를 열며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다른 미술 작가들과는 한참 다른 길을 걸어왔다. 어린 시절 미술학원에서 연필을 쥐여주며 판에 박힌 듯 똑같은 데생 연습을 시키는 것이 싫어서 학원식 미술 교습을 받지 않았다. 대신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서 버스를 타고 미술관에 다니며 그림을 보는 것을 즐겼다.
대학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고, 주한 프랑스 대사관 등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했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결국 그를 미술의 길로 이끌었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공부하거나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작가는 조형적인 분야에서 능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처음에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부분에서 많이 힘들어 합니다. 관념과 제도를 깨고 벗어나야 비로소 원하는 작업이 나오는데, 어린 시절부터 순수하게 보는 것만 했던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프랑스에 와서도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부터 시작했고, 미술에 대한 선입견 없이 시작했던 저에겐 그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프랑스에 건너간 그는 2000년 무렵부터 파리의 고등국립예술학교인 보자르(ENSBA)의 부설 교육기관에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프랑스 현대 추상화가들의 모임을 접했고 다른 작가와 생각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프랑스의 중견 추상작가 피에르 뒤노아이에, 프레드릭 프라트 등 여러 스승을 만났다. 백지 상태에서 차곡차곡 쌓인 그의 경험은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은 자유로운 그림을 탄생시켰다. 선을 이용해 볼륨감을 나타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림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수없이 많은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추상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본인의 생각이 자유롭다면 훨씬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생각이 굳어있지 않은 아이들이 제 작품을 보며 얼마나 다양한 감상을 쏟아내는지 몰라요. 조형성과 색을 얼마나 잘살려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가가 저의 고민입니다.” 미술과 만나기 위해 오랜 길을 돌아온 그는 오는 19∼25일 경인미술관에서 전시를 갖고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02)733-4448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