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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서울광장 시민 1만7000명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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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사저주변·서울역 광장 등 '애도 물결'
이희호 여사, 시민들에 감사·고인의 유지 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23일 오후 국회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체취와 숨결이 배어 있는 서울 시내 곳곳을 마지막으로 둘러봤다.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서울광장, 서울역광장 등을 지나는 곳곳마다 수많은 시민들이 몰렸고, 이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김대중 선생님’을 연호하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모인 1만7000여명의 시민들이 운구행렬을 맞고 있다.
연합뉴스
오후 3시25분. 운구행렬은 김 전 대통령의 영정차를 필두로 국회 영결식장을 나서 여의도 민주당 당사로 출발했다. 28대의 경찰 사이드카와 선도차, 대형 태극기를 건 4대의 차량, 영정을 부착한 오픈카를 앞세운 영구차 뒤로는 부인 이희호 여사 등 유족을 태운 승용차와 경호차량, 버스 7대가 따랐다.

운구행렬은 국회 출발 뒤 10분 만에 민주당사에 도착했다. 민주당사 앞에는 정세균 대표와 전·현직 국회의원 및 당직자들이 운구행렬을 맞았다. 이어 시속 30∼40㎞로 서강대교를 지나 김 전 대통령이 반세기를 보낸 동교동 사저로 향했다. 사저 주변에는 오전부터 지지자들이 땡볕 아래서 김 전 대통령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렸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다녔던 서교동성당의 성가대는 ‘순교자의 노래’ 등의 송가를 부르며 운구행렬을 맞았다. 김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홍업씨의 장남 종대씨가 든 고인의 영정은 1층 접객실과 2층 서재, 투석실 등을 천천히 둘러봤고, 사저 바로 옆 김대중도서관 1층 전시실과 2층 자료실, 5층 집무실도 찾았다. 영정은 서재와 집무실에서 고인이 사용하던 의자 위에 잠시 올려지기도 했으며, 이 여사가 자신의 자서전 앞 표지에 쓴 마지막 편지가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20여분 만에 사저를 떠났다.

운구차는 김 전 대통령이 ‘존경하고, 사랑한’ 국민이 기다리는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1만7000여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은 노란색 플래카드와 노랑풍선을 들고 운구차량을 맞았다. 운구행렬이 광화문광장을 거쳐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곳곳에서 오열했다. 덕수궁 앞에 있던 일부 시민은 서울광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경찰과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 여사가 시민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잠시 운구차에서 내리자 위로의 함성이 서울광장에 울려퍼졌다. 이 여사는 대국민 인사말을 통해 “제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국장 기간에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이어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려 피나는 고통을 겪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남편이 추구한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힘줘 말했다. 시민들은 이에 커다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으며, 김 전 대통령이 생전 즐겨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운구차량이 서울광장을 떠나자 시민들은 노란색 풍선을 일제히 날려보냈고, 일부는 차도를 따라 서울역 쪽으로 행진하려다 경찰의 저지를 받기도 했다.

애초 서울역광장에서 잠시 멈추기로 했던 운구행렬은 바로 서울역광장을 지나쳐 오후 4시50분 장지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영면에 들었지만 추모의 발길은 밤늦도록 계속됐다.

장원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