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내 사랑 내 곁에' 박진표 감독 "사랑이 삶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하고 싶었다"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살인적 감량 등 4중고를 이겨낸 김명민의 연기는
단순히 '잘했다'고 말하기가 미안할 정도…"
데뷔작은 노인들의 성(性)을 다룬 ‘죽어도 좋아’였다. 에이즈 걸린 여성과 시골 총각의 사랑 이야기인 ‘너는 내 운명’과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다룬 ‘그 놈 목소리’까지 그의 전작 3편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었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실재하지만 낯선, 그래서 주목받지 못하고 배려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박진표 감독은 새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 대해 “일단은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재미를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라고 여기지 말고 우리들의 이야기, 가족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감동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덕 기자
24일 개봉하는 ‘내 사랑 내 곁에’의 주인공은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남자는, 그리고 여자는 결론이 뻔히 정해져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다. 실화가 아니라 픽션이라는 점에서 전작들과 다르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선 닮아 있다. “삶이 곧 사랑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는 박진표 감독을 최근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짜고짜 ‘너무 낯설고 극단적인 상황만 다루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순간 표정이 바뀌며 “그걸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편견”이라고 답한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극단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노인들 사랑 못하라는 법 없고 실제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 사랑하고 계시잖아요. 에이즈에 걸렸다고 해서 법적으로 사랑이 금지된 것도 아니고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일 텐데, 불치병을 가졌다고 사랑이나 결혼 못하란 법 있나요. 조금만 눈을 돌리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몰라서 그런 것이겠죠.”

그는 “사람들을 통해서 사회의 통념과 편견이 보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신작에서 루게릭병을 다루게 된 것도 그런 생각과 맥이 닿아 있다. “루게릭병은 환자 수가 적다 보니까 의외로 안 알려진 병이에요. 연구단계인데 치료약도 없고, 풀어야 될 숙제도 많죠. 1500∼2000명 정도 되는 국내 환자들이 소외받고 아파하고 있고요. 그런 점에서 사회적 관심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꼼짝없이 누워서 근육이 다 빠진 상태로, 의식과 감각은 그대로인 채 자기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 병의 양태가 대단히 영화적이라는 점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배역에 자신을 완벽하게 몰입시키는 배우 김명민을 만났다. 전작에서 전도연, 황정민, 설경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췄던 그의 배우 복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김명민과의 만남을 떠올린 그는 “처음에 명민이는 너무 악몽이고, 자신이 없다면서 난색을 표했다”면서 “그런데 난 김명민이라는 좋은 배우가 자신이 없다고 하는 데에서 오히려 굉장한 신뢰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김명민을 가리켜 ‘(연기에) 미친 배우’, ‘괴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몸무게를 72㎏에서 52㎏로 줄인 살인적인 감량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명민이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4중고’를 이겨냈어요. 그중 한 가지가 살을 빼는 ‘극단의 몸 연기’였죠. 나중에는 죽을까봐 내가 그만 빼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거기에 루게릭병 환자로서 ‘사랑의 감정’을 연기했고, 육체의 감옥에 갇혀가는 자신과 싸우는 ‘자존의 감정’을 연기했죠. 그리고 신경장애로 인해 감정이 왔다갔다하면서 ‘통제가 안 되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이 대단한 배우는 해낸 겁니다. 아내 역을 한 (하)지원이는 그걸 석달 내내 지켜보면서 그 감정에 저절로 빠지는 거죠. 두 명의 연기는 단순히 ‘잘했다’고 말하기가 미안할 정도예요.”

영화의 공간은 중반부 이후 6인실 병동으로 이동한다. 병실에는 주인공인 루게릭병 환자 말고도 한순간 전신마비가 됐거나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한 병실에 누워 있으면,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랑하는 사람을 내 곁에 두는 게 옳은가,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는 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들이요.” 6인실 병동은 “끝까지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가 살아 있는 공간이고, 그래서 그는 “그 공간의 나머지 인물들에게 애정이 크다”고 말한다.

‘그 놈 목소리’ 이후 “실화가 주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그는 ‘내사랑 내곁에’로 조금은 그런 부담을 떨쳐낸 듯 보였다. “실화는 그 자체가 사회적인 아픔을 갖고 있거나, 비슷한 경우에 속한 사람들이 있죠. 극과 사실의 경계를 잘 타야 되고, 상영 후에도 아픔이 지속된다는 부담이 있어요. 이번 영화도 적지 않은 루게릭병 환자들과 가족들이 본다는 점에서 그런 부담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사랑스럽고 부담이 덜 되는 영화였어요.”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