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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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세잔… 동서양의 명화 과거를 깨고 영상으로 부활

미디어 아트작가 이이남 작품전
1741년쯤 서울 남산의 안개 낀 달밤을 그린 겸재 정선의 ‘장안연월(長安烟月)’과 1904년쯤 세잔이 그린 ‘생 빅투아르 산’이 시공간을 초월해 조우한다. 겸재의 산에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세잔의 산이 오버랩된다. 명화의 이미지를 TV 모니터 화면에 동영상으로 구현하는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40)의 작품이다.

◇미래 어느 날의 금강산 풍경일 수 있는 ‘신-단발령 망금강’.
기존의 외관만 다루고 묘사하려는 방식과는 달리 세잔은 자연의 본질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통찰하고자 했다. 외형을 단순화하여 본질에 가까운 거의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해 ‘형태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라고 격찬을 받으며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이는 160여년을 넘어 겸재가 이미 구현한 화법과 맥을 같이함을 작품 ‘겸재 정선과 세잔’은 넌지시 보여준다.

겸재의 ‘박연폭포’도 과거라는 덧개를 깨고 나와 소생한다. ‘쏴’ 하는 물소리와 함께 폭포수가 6m 아래로 세차게 떨어진다. 46인치 LED TV 6대를 세로로 연결해 만든 박연폭포는 겸재 정선이 보았을 박연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관람객의 눈앞에서 만들어낸다. 그런가 하면 5만원권 지폐 뒷면에 그려진 어몽룡의 ‘월매도’ 위로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수북이 쌓인다.

18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는 이이남 개인전에선 동·서양의 고전명화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소재와 표현 방식이 다양해진 작품을 볼 수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겸재의 ‘단발령 망금강’ 풍경엔 케이블카와 산 아래에 신도시풍경이 화려하다. ‘신-단발령 망금강’이다. 자연은 훼손되고 기다림의 미학은 사라졌다.

익숙함을 뒤흔들어 고정관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엔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를 재해석한 ‘신-마릴린 먼로’에서는 먼로의 트레이드마크인 입술 위 점이 20분간 얼굴 전체를 조금씩 옮겨다니고,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우는 여자’를 소재로 한 ‘신-우는 여자’ 속에서는 작품의 특징인 망점들이 흩어졌다 다시 모여드는 식으로 익숙한 그림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원래 조각을 했던 작가는 최근에는 입체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TV 모니터 3대를 삼각기둥 모양으로 만든 작업은 이런 관심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평면을 하다 보니 입체가 그리워지더라고요. 아무리 평면에서 3D작업을 잘해도 공간을 압도하는 입체의 에너지는 표현하기가 어렵거든요. 앞으로는 다시 입체작업만 할지도 모르겠어요.”

이이남은 미디어아트를 TV모니터에 내장시켜 미디어아트의 소통방식에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02)720-1524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