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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신문활용교육)] 친일인명사전 ‘미래’ 그리는 계기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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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前 대통령 등 유력인사 4390명 이름 올라
단편적 내용만 골라 낙인 찍는 것은 성급한 결정
소모적인 친일논쟁 지양… 용서와 화해 바람직
우리 사회가 친일 과거사 청산 문제로 떠들썩하다. 광복 이래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이 해묵은 논쟁이 최근 들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이 사전에 우리 역사 속 유력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하며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광복 이후 주요 행적 등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광복 직후 반민특위가 친일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고 해체된 지 60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언론인 장지연·김성수·방응모, 음악가 안익태·홍난파, 무용가 최승희 등 유력 인사 4390명의 이름이 포함됐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27일 일제 강점 막바지인 3기(1937∼1945)에 친일 행각이 확인된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2005년 6월 출범한 위원회는 30일로 모든 활동을 종료했다.
연합뉴스
# 역사 정의실현 단서 열어


민족문제연구소는 국가가 외면한 미해결 과제를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역사 정의 실현의 단서를 열었다는 점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최초로 공개됨으로써 최근 만연하고 있는 퇴행적 역사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전에 이름이 오른 인사들의 유족과 기념사업회, 보수단체 등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평가 대상 인물의 삶의 단편적 내용만 골라 친일이라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가 1905년 국권을 상실해 40년간 일제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에 김구 선생처럼 식민통치에 맞서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인사들도 있지만 국내에서 교육 언론 사업을 통해 민족 계몽운동을 펼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일제의 지배하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제에 협력도 하고 저항도 하는 일종의 이중적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생의 행적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1949년 반민특위가 단죄 대상을 악질적 민족반역자 200여명으로 국한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애국자,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진 인사들이 친일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을 슬퍼하여 민족적 울분을 표현한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선생이나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떠올렸던 안익태 선생이 친일 인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단편적 친일 행위로 인해 이들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배신자로 평가받게 하는 것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목적은 아니다. 

박기현 한우리독서논술 연구원
단편적 친일 행위가 그들에 대한 최종적 평가를 내리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친일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제의 협박과 강요 등 권력의 공포에 굴복했을 가능성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또 일시적으로 친일 행위를 했지만 과(過)보다 공(功)이 더 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過보다 功이 더 큰 경우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핵심 논점은 친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선정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닌 까닭에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인사들이 친일 인사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성급한 결정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임의대로 정한 선정 기준에 따라 정리한 하나의 역사적 결과물이다. 해당 인물이 친일 인사라는 인물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준에 적용시켜 봤을 때 그 시대의 유력 인사인 누가 이런 부분에서 어느 정도 친일 행위를 했었다는 기록을 정리한 그야말로 역사 기록이다.

소모적인 친일 논쟁 쟁점화보다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기현 한우리독서논술 연구원

생각해 볼 문제

1.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2.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제기된 문제점은?

3. 여러분이 친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