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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무형문화재…한민족의 혼이 사라진다] “수백년 이어온 줄타기, 내가 마지막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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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예능보유자 김대균씨 영화 ‘왕의 남자’ 흥행 이후 반짝 인기
시간 많이 걸리고 항시 위험… 발길 돌려
재능도 필요하지만 줄타기는 기초 중요
후계 육성위한 전수교육관 건립 시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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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을 이어온 줄타기를 후손들에게 더 이상 보여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예능보유자인 김대균(43·줄타기보존회 회장·사진)씨. 땅 위 3m 높이의 줄에 올라타 온갖 재주를 넘으며 구경꾼들의 혼을 빼놓는 그이지만 줄타기의 앞날만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워진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스승에게 배운 줄타기를 가르쳐 줄 마땅한 전수자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젊은 나이기에 지난해부터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전수교육을 시작했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대대로 이어져 온 줄타기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전승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요즘 김씨의 일과가 돼 버렸다. 그는 “이대로 대가 끊긴다면 나 하나만 믿고 기능을 가르쳐 주신 스승뿐 아니라 국가에도 커다란 죄를 짓는 것이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2006년 조선시대 광대들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영화 ‘왕의 남자’가 흥행하면서 극중 주인공이 선보인 줄타기의 인기도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줄 위에서 이뤄지는 화려한 기술에 반한 일부는 줄타기를 배우겠다며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줄타기 기술은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웠고 늘 위험이 도사렸다. 용기를 내 찾아왔다가도 며칠 후면 발길을 돌렸다. 끝까지 남아 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줄타기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기예뿐 아니라 소리와 재담, 음악에도 정통해야 한다. 서양 줄타기는 단순히 ‘행위(Working)’로서 줄 위에서 중심 잡기, 저글링 등을 주로 하지만 김씨의 줄타기는 줄광대가 43가지 기예와 줄 소리, 춤, 아니리(말·사설) 등을 연행하는 ‘줄놀음(Performance)’이다. 1979년 줄타기를 시작한 김씨도 1989년 자신의 스승과 동문인 이동안 선생에게 아니리를, 판소리 춘향가 인간문화재인 성우향 선생에게 소리(창·노래) 공부를 한 후 2000년에서야 비로소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줄타기는 줄 위에서 이뤄지는 행위뿐 아니라 줄 아래 놀이마당에서 벌어지는 삼현육각(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 연주와 어릿광대의 재담이 함께하는 종합예술”이라며 “이런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줄타기는 한갓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유자 인정을 받았을 때 김씨의 나이는 33세에 불과했다. 24년 동안 줄을 탔지만 여전히 연구해야 할 것이 많은 때였다. 전수할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함께 공연하는 팀들의 생계도 걱정이었다.

어느 정도 팀이 안정되자 그는 3, 4년 전부터 전수조교를 키우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를 졸업하고 2007년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에서 민속공예 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치는 등 이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난관에 부딪혀 계승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무엇보다 ‘줄타기는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위험을 줄이려면 기초부터 착실하게 닦아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젊은 사람 중에 줄타기에 소질이 있는 이가 몇몇 있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소리와 음악 등을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

줄타기보존회 류연곤 사무국장은 “단순히 줄타기 꾼이 아닌 줄타기를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며 “그나마 소질이 있는 사람들도 줄타기를 너무 쉽게 생각해 전수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가 생각해낸 건 지역교육과 연계한 프로그램. 대부분 선천적인 재능이 필요한 다른 무형문화재와는 달리 줄타기는 특성상 어려서부터 균형감, 담력, 기능 등을 익혀 갈고닦는 등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

김씨는 줄타기 전수교육관을 지어주겠다는 과천시의 약속에 따라 2007년 사무실을 과천시 갈현동으로 옮겼다. 과천시는 그러나 애초 약속과 달리 ‘시 재정여건 및 부지확보 가능성을 판단, 장기적 관점에서 (관내 건설 예정인) ‘지식정보타운’ 건립계획과 연계하여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그를 초조하게 하고 있다.

김씨는 인터넷 공고를 통해 모집한 8∼11세 어린이 10명에게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줄타기 교육을 했다. 올해도 선착순으로 10명을 뽑아 연말까지 줄타기 기본교육에 나설 예정이다. 김씨는 “제대로 된 전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전수교육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 팀장, 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