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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서 불려 나온 문학의 거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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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 카프카… 오웰… 서정주… 김수영… 김동리…
박형준·장영희씨 등 25명이 만나 삶·문학 조명
죽은 자들을 불러내 가상 인터뷰를 시도한 흥미로운 책이 출간됐다. 이미 작고했지만 작품이 오래 남아 깊은 영향을 끼친 이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은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중앙books)는 딱딱한 해설서나 단조로운 형식의 평전보다 더 입체적으로 그들의 삶과 텍스트를 파고들 수 있는 흥미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을 인터뷰한 25명의 필진은 인터뷰 후 자신도 죽은 자들의 대열에 합류해 버린 영문학자 장영희(1952∼2009)를 빼고는 모두 현재 국내 문단이나 강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나의 인간적인 도전입니다. 나는 신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 기막힌 불공평함에 대해서. 신은 비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우리를 꼭두각시처럼 갖고 놉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대로 순명하면서 살지만, 난 그렇게 하기를 거부합니다. 싸우다 죽는다 해도 나는 일어나 싸웁니다.”(10쪽)

장영희씨가 ‘모비딕’의 주인공 에이헤브 선장을 불러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흰 고래를 쫓았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이다. 에이헤브는 “나는 운명의 힘에 주눅 들어서 그대로 주저앉아 지리멸렬하게 타협과 복종만 하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경멸한다”고 부연했다. 답변의 형식이긴 하지만 정작 산 자가 아무 말이 없는 죽은 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덧씌우는 상황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장씨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인간애마저 저버리는 에이헤브 선장의 편집광에 대해 공격하자 그는 “누군가의 치열한 투쟁을 보는 것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롭게 삶의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응수했다.

◇아르튀르 랭보                ◇프란츠 카프카
박형준(44) 시인은 프랑스의 천재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를 작은 역에서 만났다. 랭보와 파리까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인터뷰할 참이었지만 첫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그냥 대합실에 앉아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른일곱 살의 랭보는 오른쪽 다리에 종양이 생겨 절단한 상태였고 3개월 후면 이승을 떠날 운명이었다. 막상 시 얘기가 나오자 다리를 절단한 환자답지 않게 활력이 넘치던 랭보의 말을 박형준은 이렇게 받아 적었다.

“나는 시인들이라는 작자들이 써대는, 시라는 작은 그릇에 담긴 예쁜 꽃들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입니다. …시는 얌전한, 새색시의 그런 빌어먹을 짓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입니다. 한마디로 욕망, 야심인 겁니다.”(53쪽)

박형준은 랭보에게 자신의 직업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가 죽은 후 시의 영웅이 될 것임을 알았지만 그의 후광 따위에 결코 구걸하는 시인이 되고 싶지 않았단다.

진중한 종교적 철학적 글쓰기를 견지해온 소설가 정찬(57)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를 만나 그의 소설보다는 삶, 그중에서도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펠리체 바우어라는 여자와 약혼과 파혼을 반복하며 왜 그네를 받아들이지도 흔쾌히 놓아주지도 못했는지 묻자 카프카는 “나는 숙명적으로 타인을 나의 공간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였다”면서 “그것을 알면서도 두 번씩이나 약혼을 한 것은 숙명에 대한 짧은 저항이었다”고 술회했다.

◇서정주                                        ◇김수영                                       ◇이문구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산문가 에밀 시오랑(1911∼1995)에게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고종석(51)이 그의 짙은 염세주의와 겉으로 드러난 삶과의 모순에 대해 언급했을 때는 “마음만 먹으면 그 순간 스스로 내 생을 끊을 수 있다는 최후의 희망을 원기소로 삼아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니 어느덧 팔십사년의 세월이 흘러가더라”며 “자살이라는 보험이 있는 한 세상은 한 번 살아볼 만하다”고 ‘진정한 염세주의자’로서 조언했다.

이 책에서는 이 밖에도 발터 벤야민, 미하일 바흐친, 조지 오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을 이재현 이득재 복거일 김정란씨가 만났다. 국내 인터뷰 대상으로는 서정주 김수영 임화 한용운 백석 김동리 김종삼 이문구 오규원 등이 불려나와 장석주 김명인 김윤식 이도흠 오명근 황충상 김기택 유용주 장경린씨 등과 대화를 나누었다.

미당은 “내가 땅에서 영욕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는데, 그게 마치 한바탕 잔치 같은 것인데, 지상의 잔치는 아무리 성대해도 그 끝은 쓸쓸하지만 하늘나라에서 사는 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잔치에 초대된 것 같다”고 저쪽 세상의 근황을 정석주(56) 시인에게 전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