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지방법원 합의부가 담당한 중요 형사사건 피고인 10명 중 6명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형사합의부 1심 판결의 약 40%가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깨진 것으로 드러났다. 항소심, 상고심으로 가는 재판이 많을수록 불필요한 사회적·경제적 비용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1심 판결의 권위와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8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지법 합의부가 처리한 형사사건 1심 피고인 1만7731명 중 1만667명이 항소해 60.2%의 항소율을 기록했다. 형사사건의 경우 피고인 혐의가 사형, 무기징역 또는 단기 1년 이상 징역·금고형에 해당하는 중요 사건은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에 배당되고 나머지는 단독판사가 맡는다. 지법 단독판사가 맡은 형사사건 1심 피고인 항소율은 29.8%로 집계됐다.
항소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1심 판결에 대한 불신의 벽이 두껍다는 뜻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사건이 1심에서 끝나 항소율이 10∼20%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법원행정처 통계를 보면 1심 판결이 불신을 받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고등법원이 지법 형사합의부 1심 판결을 깬 비율은 40.9%로 나타났다. 통상 합의부 사건 항소심은 고법이, 단독판사 사건 항소심은 지법 항소부가 각각 처리한다. 지법 형사항소부가 단독판사 1심 판결을 깬 비율도 40.4%에 이른다.
1심 판결이 10건 중 4건꼴로 항소심에서 뒤바뀌고 있으니 피고인이든, 검찰이든 자기한테 조금만 불리한 판결이다 싶으면 항소를 택하는 구조다. 자연히 1심 재판부나 판결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재판 장기화는 관련자들의 시간과 경제력을 소진시킴은 물론 사법기관의 능률적 운영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1심이 이미 다룬 쟁점이 항소심에서 되풀이되는 심리 중복에서 오는 낭비는 엄청나다.
최근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사건 1심에서 인천지법은 유죄, 전주지법은 무죄를 각각 선고했다. 같은 사안인데도 정반대로 나오는 법원 판결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깨져도 유무죄 판단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명한다. 1심이 선고한 형량을 좀 더 현실에 맞게 조정하려다보니 판결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양형기준이 서로 다르다”고 법원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검찰청의 한 검사는 “서둘러 양형기준법을 제정해 모든 법관이 통일된 양형기준을 적용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법 부장판사에서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법관 인사제도 때문에 경륜 있는 판사가 지법 대신 고법에 몰려 있는 점도 ‘부실한’ 1심의 주된 원인이다. 대법원장 직속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하급심을 강화해 국민 신뢰를 높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