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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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잊어선 안 될 在日사학자 정조묘 교수

2010년, 한일 강제병합의 불행한 역사로부터 100년째 되는 해에 안타까운 한 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녀는 한국과 일본 간의 근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재일교포 사학자 정조묘 교수다. 오사카 국제이해교육연구센터 이사장이었던 정 교수는 최근 타계했지만 그가 남긴 한일관계사 연구는 훗날 후학들에게 대단한 평가를 받을 게 분명하다. 평생 한국과 일본의 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 침탈 과정과 그 역사적 연원을 연구한 업적은 보수적인 일본 사학계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이수경 일본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지난해 6월 나라교육대학에서 열린 백제문화 심포지엄에 일부러 필자를 찾아와 “과로하면 일찍 쓰러진다”며 되레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던 정 교수. 나와 정 교수는 그 뒤 의기투합해 재일동포 관련사를 정리하자며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일본의 다양한 사회문제와 재일교포 문제 해결을 위해 몸 돌볼 시간도 없이 몰두했던 정 교수는 어릴 때부터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많은 고생을 해온 교포 사회의 살아있는 증인이었다. 재일교포 사회가 정 교수의 타계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정 교수의 예기치 못한 사망을 필자는 조금이라도 예견해서일까. 다가오는 신학기부터 사용할 교사자격증 시험 필수과목인 국제인권수업 교과서를 집필하는 도중 ‘재일동포와 일본사회’에 대한 원고를 의뢰했다. 그렇게 쫓기면서도 쾌히 승낙을 했고, 우정 어린 원고를 받았으나 그것이 정 교수의 유고가 될 줄 몰랐기에 나의 슬픔은 더욱 크다.

상대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이해하면서 재일교포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노심초사하던 정 교수. 그가 버겁게 버텨온 사회문제의 일부라도 바꿔보려고 노력해온 고투를 독자들과 함께 새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65년간 그 여린 몸으로, 차디찬 패전 직후의 일본 사회에서 차별과 싸우며 자신을 잊고 버텨온 그의 삶이 있었기에 재일교포의 권리 향상도, 한일 관계의 기반 구축도 가능했음을 우리 정부와 사회는 물론 많은 교포들도 잊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정 교수가 마지막까지 몰두했던 재일교포 무연금 문제는 재일 한국인을 위한 그녀의 마음가짐의 일단을 드러낸다. 1959년부터 시행된 국민연금법상 수혜 대상이 일본인으로 한정된 국적 조항 때문에 재일 한국인은 배제됐다. 1982년 시작된 ‘내외인 평등’을 골자로 한 난민조약에 의해 일부 재일 외국인도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20세를 넘은 장애자와 60세 이상 고령자는 제외된다는 규정 때문에 재일교포 고령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재일교포 사회 주류를 이루는 교포 2세들은 일본밖에 모르는 사실상 일본인이지만, 국적 조항에 걸려 사회보장 혜택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평생을 재일교포의 권익 향상을 위해 몸바친 정 교수. 그의 죽음을 계기로 조국 한국이 재일교포의 아픈 삶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줬으면 한다.

이수경 일본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