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가 시행된 지 11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다. 정부는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시키고 환자의 약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르면 10월부터 약품 저가 구매 시 이윤을 인정하는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와 리베이트 수수자도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을 도입키로 했다. 하지만 의료계와 제약업계 등에서는 실효성과 약가 인하 효과가 없다며 강력 반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중 건강보험에서 지출되는 약품비는 2003년 5조5830억원에서 2008년 10조3036억원으로 연평균 13.6%씩 증가했고, 총진료비에서 차지하는 약값 비중도 2008년 기준으로 29.4%에 달한다.
약품비가 늘면서 제약사 간 판촉경쟁도 뜨거워진다.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는 필수항목이다.
리베이트는 의약품을 병·의원 등에 납품할 때 채택료 명목으로 주는 ‘랜딩비’에서 골프접대, 학회·여행경비 지원, 의료장비 지원 등 다양하다. 심지어 제약사가 비용을 대고 의료인력이 부족한 병원에 연구원이나 간호사 등을 파견하는 일도 있다.
리베이트는 은밀하게 주고받기에 정확한 규모를 알 순 없지만 업계에선 2조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 12개 국내외 제약사들을 대상으로 불법 리베이트를 조사해 국내 제약사들의 판매관리비 비율이 매출액의 평균 35.2%에 달하고, 매출액의 20% 정도는 리베이트로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공정위는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액을 최소 2조800억원에서 최대 3조1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리베이트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의약품의 특성 때문이다. 의약품은 다른 상품과 달리 환자가 아닌 의사나 병원이 선택권을 갖는다. 이로 인해 제약사들은 소비자가 아닌 의료기관을 상대로 판촉경쟁을 벌이면서 음성적으로 뒷돈을 뿌린다.
신약개발보다는 복제약에 의존하는 국내 제약사들의 행태도 문제다.
현재 건강보험에 등재된 의약품 가운데 복제약은 71.9%. 대부분 제약사가 약효가 같고 이름만 다른 약을 만든 뒤 병원을 상대로 한 로비에 의존하며 의료시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제도 바뀌어도 ‘뒷돈’ 여전=복지부는 1999년 11월 병·의원의 의약품 구입가와 무관하게 고시가격으로 약제비를 상환하던 ‘고시가 상환제도’를 실제로 구입한 약제비 가격으로 상환하는 ‘실거래가 상환제도’로 변경했다. 이는 병·의원들이 정부 고시가와 구입가 차액을 부당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도를 바꾸면서 건보 재정을 절감하고, 불법적인 의약품 거래가 투명화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음성적인 거래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의원들은 약품 구입에 따른 이윤을 인정하지 않기에 상한금액보다 의약품을 싸게 구입할 이유가 없었고, 제약사들은 실거래 가격이 해당 품목의 보험 약가로 연계되는 점을 노려 상한금액을 계속 유지했다.
실제로 병·의원들은 상한금액 대비 99.5% 가격으로 의약품을 구입했다. 복지부는 더욱 강도를 높여 지난해 8월에는 리베이트 적발 시 보험약가의 최대 20%를 인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모두가 불만족인 새 약값 제도=복지부는 새 제도가 시행되면 매년 5% 정도의 약값 인하 요인이 발생해 환자부담금이 1546억원 절감되고, 병·의원 인센티브가 3606억원가량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업계와 시민단체 등은 제도시행에 회의적 반응과 함께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제약협회는 새 약값 제도가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리베이트를 증가시켜 수익성과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며 ‘시장형 실거래가제도’를 저지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한병원협회는 “병원의 노력에 의한 약가 인하액은 입원료와 진찰료를 현실화하는 재원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리베이트는 근절돼야 하지만 리베이트를 받은 사람에 대한 처벌 강화는 재고돼야 한다”며 제도 보완을 요구했다.
민주당 백원우(경기 시흥갑) 의원은 “이번 제도는 비싼 약을 여러 종류 처방할수록 병원의 이득이 커지는 구조여서 국민이 비싼 약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면서 “제약사와의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부 대형병원에 환자 쏠림현상이 가속화돼 지방 중소병원이 붕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진호 기자 ship67@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