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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중의 아프리카 로망] 소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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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차별 야만성 알린 역사의 현장
요하네스버그에 왔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요하네스버그와 인접한 ‘소웨토’이다. 실제로 여행객들이 요하네스버그를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소웨토와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을 보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소웨토는 ‘남아공 역사의 현장이자 상징’이며,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은 남아공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소웨토 지역의 클립타운. 마을 안쪽에 들어가니 판잣집들이 이어지고, 집 밖에는 알록달록한 옷가지들이 걸려 있다.
과거 백인들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의해 타운십으로 지정된 소웨토는 요하네스버그와는 쌍둥이 도시 같은 곳이다. 소웨토(SOWETO)는 ‘요하네스버그의 남서쪽에 있는 타운십(South West Townships·흑인집단거주지역)의 약자다. 요하네스버그의 소웨토는 남아공 최대 규모의 타운십이다. 소웨토는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서 16㎞ 떨어져 있으며, 차로는 20분 걸리는 거리다. 필자는 요하네스버그의 숙소에 머물면서 ‘타운십 투어’를 신청하여 다녀왔다.

요하네스버그 시내의 고층빌딩 숲을 지나 시 외곽으로 빠져나오자 커다란 거리 옆에 ‘소웨토’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현재 소웨토 지역에는 20여개의 타운십이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의 기사 겸 가이드를 맡은 흑인 자신도 소웨토에 산다고 한다. 가이드에 의하면 920만명의 요하네스버그 전체 인구 가운데 절반가량인 450만명이 소웨토에 몰려 산다. 케이프타운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아프리칸스어와 코사어를 사용하는 데 반해 소웨토 사람들은 줄루어를 쓴다.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처음 데려간 곳은 소웨토 가운데 흑인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클립타운(Kliptown). 가이드는 소웨토에도 경제적으로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 가운데 우리 일행이 방문하는 클립타운은 하층의 주민들이 사는 곳이다. 약 4500명의 주민이 이곳에 살고 있다. 

◇한 어린아이가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고 있다.
우리 일행은 먼저 클립타운의 자체교육시설을 돌아보았다. 소웨토의 실업률은 50%를 넘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클립타운에는 학교가 없기에 어린아이들을 위한 보육시설과 배움터를 운영하고 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교육시설을 돌아보고 유치원에 들어가니 꼬마 아이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야단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저마다 모델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 이곳에 사는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볼 기회가 없기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클립타운의 거주 지역.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첫눈에도 후락한 판자촌 같다. 낮은 판잣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고, 황토 빛의 거리에서는 소년들이 공을 차고 놀고 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집 사이를 걸어가니 한층 더 빈민촌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구불구불 난 작은 길에는 판잣집들이 이어지고, 집 밖에는 빨래한 알록달록한 옷가지들이 걸려 있다. 걸어가다 보니 어린 남자아이 한 명이 빈 통을 들고 물을 길러 가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에는 4개의 수도꼭지만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기에 동네의 충전소에 가서 배터리를 충전해 사용한다. 거주지를 약간 벗어나 길가로 나가자 식료품 가게, 정육점, 잡화점이 눈에 들어온다. 아기를 등에 업고 머리에 짐을 잔뜩 얹은 한 아낙네에게 인사하고 사진을 청했더니 포즈를 취해준다. 거리를 벗어나니 넓은 공터 한쪽에 배터리 충전소가 보인다. 안쪽에 들어가 보니 선반에 배터리가 여러 개 놓여 있고,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후 1시쯤 점심식사를 위해 다른 소웨토 지역을 가니 조금 전에 본 클립타운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판잣집도 없고 도로도 깨끗이 포장된 게 일반 주택가와 그리 다르지 않다. 소웨토에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실감이 난다. 뷔페식 점심을 마치고 우리 일행이 향한 곳은 헥터 피터슨 박물관이다. 박물관이 서 있는 곳은 흑인인권운동의 본거지이자, 남아공 흑인들에게 매우 역사적인 장소이다. 박물관 건너편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와 데즈먼드 투투 주교가 살던 집이 있다. 만델라가 1963년 체포되기 전에 살던 집이다.

◇소웨토 상점가에서 만난 한 여인.
1976년 6월 16일은 소웨토에서 대규모의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항쟁이 일어난 날이다. 당시 백인 정부는 흑인학교에서 모든 수업에 백인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흑인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기 위한 백인 정부의 방침이었다. 이에 대해 소웨토의 어린 학생들이 아프리칸스어를 배우는 것을 거부하고 반대데모를 일으켰다.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군대가 시위대에 발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불행하게도 소웨토 항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당시 13세의 ‘헥터 피터슨’이라는 이름의 어린 소년이었다. 어린 학생이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 한 학생의 품 안으로 옮겨지고 누이가 울부짖으면서 따라가는 처절한 광경이 한 장의 사진에 담겨 세계에 보도된다. 당시 700여명이 사망하고, 4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중학생 나이의 어린 학생이었다.

남아공에서 자행된 아파르트헤이트의 야만성과 비참함을 세계에 알린 소웨토 항쟁은 흑인인권운동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이후 이날은 소웨토 주민들뿐 아니라 남아공 흑인사회에서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되고 있다. 2002년 헥터 피터슨이 숨진 장소에 헥터 피터슨 박물관이 세워졌다. 박물관 앞에는 그를 기리는 ‘1976년 6월 16일 기념비’가 서 있다.

헥터 피터슨 박물관을 관람하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은 밖에서 보기에도 좀 전에 보았던 박물관들보다 규모가 큰 듯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백인과 유색인에 따라 다르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인종차별정책을 체험하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비백인전용 입구로 박물관에 들어가니 기분이 여간 나쁜 것이 아니다. 아주 짧은 경험이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살았던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사람들이 겪었던 고초가 조금이나마 실감이 난다. 

◇헥터 피터슨 박물관. 박물관 앞에는 1976년,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항쟁에서 숨진 헥터 피터슨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박물관에는 금광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요하네스버그의 역사에서부터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되기까지 남아공에서 자행된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뿐 아니라 과거의 사진과 신문기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한쪽에는 1994년 5월 10일 프레토리아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의 연설문이 붙어 있다. “다시는 결코, 결코, 결코 이 아름다운 땅이 타인에 의해 억압당하거나 세계의 스컹크가 되는 모욕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땅에) 자유가 지배하게 하여라!”

필자가 소웨토 지역을 방문할 때 ‘사커 시티 스타디움’의 이름을 가진 월드컵 축구경기장이 한창 건설 중이었다. 이곳에서 2010년 월드컵 개막 경기와 폐막 경기가 열린다고 한다. 소웨토 지역과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을 돌아보니 가장 중요한 월드컵 경기가 소웨토 지역의 축구장에서 열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