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수일 뿐 아니라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의 전형이라는 게 보다 선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쓴 ‘난중일기’를 완역한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노승석 교수가 표현한 말이다. 노 교수는 수년에 걸친 작업으로 그간 난중일기 가운데 오독(誤讀)되고 빠진 부분을 갖가지 문헌의 고증을 통해 완역, 민음사를 통해 책으로 엮어냈다. 난중일기라는 용어도 조선 후기 유득공이 붙인 이름이며, 특히 을미년 일기(1595년)는 노 교수가 처음 밝힌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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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중일기를 완역한 노승석 교수가 어려웠던 해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장군이 행주대첩을 이끈 도원수 권율의 실책을 지적하는 부분도 새로 밝혀졌다. “기존 ‘난중일기’에서는 전쟁 중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데 권율과 갈등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 밝혀진 을미일기 4월 30일자에는 ‘원수(권율)가 근거 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반드시 실수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눌러앉을 수 있는가. 괴이하다’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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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일기Ⅰ’ 5월 21일자 일기로, 당시 부패하고어지러웠던 정치 현실을 개탄한 내용이 적혀있다. |
장군은 당시 조정의 어지러운 정치 현실에 대해 “배설(裵楔)이 권세 있는 집안에 아첨이나 하여 감당치 못할 지위에까지 올라가서 국가의 일을 크게 그르쳤건만, 조정은 이를 살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정유일기Ⅱ’ 8월 12일자) 우수사 김억추(金億秋)는 겨우 만호(萬戶)에만 적합하고 곤임(장수)을 맡길 수 없는데,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정유일기 9월 8일자)”라고 썼다.
이순신을 연모했다는 여인들이 난중일기에도 여럿 등장한다. 노 교수가 새로 밝힌 내용이다. “전남 영광에서 한양 기생 내산월(萊山月)을 만나 술을 마셨다.(병신일기 9월 11일자)” “종 여진(女眞)과 시간을 함께 했다.(병신일기 9월 12, 14, 15일자)” 내산월은 한양에 살던 명기로 충무공이 거북선을 만들 때 금괴를 바쳐 경비 조달에 도움을 준 여인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