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중 발굴 유물은 도자기가 다수를 차지할까. 도자기가 수중에서도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침몰당한 선박이나 그 안에 실린 물건은 바닷속에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도 바다 생물의 공격으로 분해되거나 훼손되고 만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바다에 발달한 갯벌 속에 목제 유물이 완전히 매몰되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세계에서도 유명한 수중문화재 역시 도자기나 돌로 만들어진 유물이 대부분이다. 또한 수중 발굴 도자기는 육상에서 발굴된 것과는 달리 완형을 유지하고 있는 일이 많다. 그 수량도 한꺼번에 적게는 수백 점에서 많게는 수만 점이 발굴된다.
◇2004년 충남 보령 원산도 유물 발견 당시 모습. 원산도에서는 사진에 보이는 단 한 점의 작은 접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파편만 발굴됐다. |
고려는 선진적이었던 중국의 도자기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비색청자를 만들어 내고, 12세기 중반을 전후해서는 상감(象嵌)이라는 공예기법을 도자에 적용, 우리만의 독특한 기술로 발전시켰다. 도자기 표면을 구름이나 학·나무·꽃 모양으로 파낸 다음 불에 구우면 하얗거나 검은 색으로 나타나는 흙을 채워 넣는 상감기법은 기술적인 정교함과 다양한 문양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가 최고의 도자기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한 시대에 고려만은 자체에서 생산한 청자로 수요를 충족시켜 세계 최고 도자기 생산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원산도에서 발굴된 청자 매병 편. 이들 세 개의 파편은 덕원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254호 청자음각연화절지문매병(사진 오른쪽)과 유사한 무늬와 형태를 지니고 있다. |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충남 보령 원산도 수중 발굴 조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수중 발굴 도자기는 온전하게 형태가 남아 있는 완형이 주를 이루고 침몰과정에서 깨진 파편이 함께 나오는데, 원산도에서는 작은 접시 단 한 점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깨진 파편만 발굴됐다. 도대체 왜 원산도 발굴 도자기들은 모두 파편으로만 남아 있었던 것일까.
원산도 발굴 조사 지역은 원래 안면도와 원산도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물살이 매우 빠른 곳이었다. 아산지구 방조제 간척공사가 마무리되면서 물 흐름도 느려지고, 점차 갯벌 위로 청자 파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민의 신고로 시작된 발굴은 썰물 때는 갯벌 위에서, 밀물 때는 수중 잠수 발굴을 진행했다. 발굴된 고려청자는 대접·접시·잔을 비롯해 향로·매병·목이 긴 병·참외 모양 병·주전자·의자·여성들이 화장품을 담거나 귀한 약재 등을 담았던 합·단지 등이 있다.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한 태토(胎土·도자기의 몸체를 이루는 점토)나 유색이나 문양 등을 살펴보면 최고급품들과 일부 질이 떨어지는 것들도 섞여 있었다. 대규모 수중 도자기 발굴 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만들어진 장소와 시기가 다르지만 한 곳에서 좌초돼 함께 발굴된 것일 수도 있고, 용도별·소비처별로 다양한 물건들을 한 배에 싣고 가다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도자기는 파편으로만 발견되었다.
골동품으로서 도자기를 본다면 완형과 파편의 가치는 비교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발굴된 청자를 고려인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원산도에서 발굴된 또 다른 청자 편. 원산도에서 발굴된 도자기 파편은 최고급 고려청자와 같은 것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국보 제94호 청자소문참외형병(사진 오른쪽)과 형태는 유사하지만 상감으로 무늬를 새겨 넣어 차이가 있다. 도자기 발전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박물관에 전시된 도자기는 화려한 조명 아래 완형의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하지만, 그 도자기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제작방법·용도·굽의 형태·굽 안에 숨겨진 글씨·유약·태토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래서 도자기를 뒤집어도 보고 만져보고 두들겨볼 필요가 있다. 또한 과학적인 분석을 위해 도자기 조각을 떼어내 보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국보급 도자기를 감히 뒤집고, 만지고, 두들겨 보고, 조각낼 수는 없는 일이다. 원산도 출토 도자기 파편은 이러한 연구를 가능하게 한 귀중한 유물이다.
◇김애경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
그런데 왜 청자 파편만이 남아 있었는지 또렷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저 이런저런 가능성만을 생각할 뿐이다. 일부러 깨뜨려서 바다에 버렸을까. 그랬다면 왜 최상품의 귀한 청자를 그리했을까. 배가 난파될 위험에 처해 무거운 물건을 버리기도 하는데, 이 때문일까.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면 험한 날씨와 거친 물살 때문에 배가 난파되면서 그 충격으로 깨진 것일까. 그런데 왜 운반했던 선박이나 다른 유물은 전혀 발견되지 않을까. 도굴로 완형의 것들은 이미 없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주민들이 그 존재를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원산도에서 발굴된 도자기는 700여년이란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역사의 비밀을 풀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청자 파편 조각을 맞추듯 천천히 하지만 빈틈없이 잃어버린 역사의 퍼즐 조각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원산도 도자기 파편의 비밀이 풀리기를 기대한다.
김애경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