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란 무엇인가. 인류에게 가장 유용한 가치 교환수단으로 여겨지지만 돈 때문에 흥망을 거듭한다면 인간 사회는 돈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폐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인류에게 더없는 보탬을 줄 것이다.”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인 니알 퍼거슨이 쓴 이 책의 원 제목은 ‘화폐의 부상(The ascent of money)’이다. 화폐는 인류를 지배하고 때로는 파멸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에는 인류와 더불어 발전하고 인류의 진보를 선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 저자는 화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때 인류는 그릇된 결과를 낳았다면서 화폐의 위상은 강등이 아니라 상승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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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알 퍼거슨 지음/김선영 옮김/민음사/2만5000원 |
역사학도이지만 금융사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퍼거슨 교수는 이 책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베니스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메디치가의 은행 시스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금융사 전반을 살펴보고 올바른 화폐 운용 방안을 찾고자 고심했다.
퍼거슨 교수는 우선 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고 운을 뗀다. 100년이 넘도록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런 세계를 꿈꿔 왔다. 근대의 급진 지식인으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칼 마르크스는 화폐는 자본주의적 착취수단에 불과하며, 가족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를 대체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화폐는 노동을 상품화하고, 정당한 노동에서 생긴 잉여는 자본 축적에 광분하는 자본가 계급의 욕심을 채워 주고 전유된다고 외쳤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돈에 대한 사랑은 악의 근원이며 혁명가에게는 노동의 족쇄라고 갈파했다.
그러나 이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논리에 대해 퍼거슨은 “인류에게 돈은 대부분 진보의 근원이었으며 발전의 동인이 되어 왔다”고 반론을 편다. 저자는 폴란드 태생의 영국 과학자 제이콥 브로노프스키의 표현을 인용해 “화폐의 부상(ascent of money)은 인류의 부상(ascent of man)에 필수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의 결정적인 사건을 좌지우지한 것도 금융이었다고 역설한다. 환전상 출신의 메디치가 같은 이탈리아 은행가들이 부를 모은 덕분에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가 꽃필 수 있었으며,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에게 승리를 거둘수 있었던 것도 유태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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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니알 퍼거슨 미 하버드대 교수. |
첫째, 빈곤은 탐욕스러운 금융업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은행이 양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빈곤이 양산됐다고 주장한다. 즉 차입자가 효율적이고 값싼 신용망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야 고리대금업자의 마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신용이라는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있기 때문에 서민들은 금융에 근본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믿을 만한 은행이 많아야 저축자가 맘놓고 돈을 맡길 수 있으며, 유한계급에서 근면한 계급에게로 돈이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건전한 신용망 구축이 선진국의 필요조건인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둘째는 평등에 관한 것인데, 금융시스템의 결함은 변덕스런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화폐는 재수좋고 똑똑한 사람에게 부를 안겨주고 운 없고 명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난을 안겨주면서 격차를 조장한다. 그런 점에서 금융은 평등하지 않다.
셋째로는 금융 위기와 강도를 예측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고 말한다. 금융의 역사는 안데스산맥처럼 들쭉날쭉 불규칙한 봉우리와 골짜기의 연속이었으며 불규칙적인 요동으로 인류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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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버킹엄 시대에 잉글랜드 왕실을 구성하는 719개 가문의 문장들을 엮어 만든 그렌빌 딥틱이다. 19세기 영국 금융계를 주름잡았던 버킹엄 가문은 과도한 차입으로 상당수 왕실 재산을 날렸다. 민음사 제공 |
그는 “금융사에서 후퇴나 위축, 소멸의 시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최악의 시기에서도 퇴보한 적은 없다. 금융사의 흐름이 톱니바퀴처럼 순환하는 듯 보여도 그 궤도는 의심의 여지 없이 위로 향해 있다”면서 금융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보완관계를 일컫는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퍼거슨 교수는 또한 책에서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한동안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 이익을 얻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양국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차이메리카 모델은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정승욱 기자 jswook @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