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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천재’ 李箱의 모습 생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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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원고·20대전후 사진 등 10일부터 전시
불과 27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로 추앙받는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국내에서 받을 수 있었던 첫 세대이고, 기차나 전차를 타고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던 첫 세대일 뿐 아니라, 이공계를 전공한 최초의 문인이었으며, 벼를 보지 못하고 자란 순수한 도시인이자 미술을 지망한 심미주의자였다. 이상은 한국의 근대문학을 업그레이드시켜 한국문학사에서 정전(正典)의 위치에까지 오른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성공고 연극반 시절 족두리를 쓴 여인의 모습으로 가장한 이상.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기획되는 가운데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이 오는 10일부터 11월6일까지 개최할 전시회 ‘李箱의 房(이상의 방)’이 각별히 눈길을 끈다. 남아 있는 이상에 관한 자료가 미미한 상황에서 이 전시회에는 육필원고와 이상의 20대 전후 사진들이 대거 공개돼 ‘박제된 불우한 천재’의 생생한 모습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성공고 시절 파고다공원에서 옆구리에 책가방을 끼고 오른손에 담배를 들고 있는 이상을 만날 수도 있고, 1934년 4월5일 친구 김해림의 혼인식에서 들러리로 선 모습도 접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 기수 시절의 얼굴, 제비다방을 운영하던 시절의 퀭한 눈빛, 화가가 되려고 했던 시절의 안식처인 경성공고 화실의 포즈도 생생하다.

1924년 공고 2학년 때 한국 학생들만의 남한산성 야유회 모습, 족두리를 쓴 여인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원용석(전 경제기획원 장관)과 함께 찍은 것도 포함돼 있다. 이상의 사진은 대부분 원용석씨의 앨범에서 찾은 것들이다. 보성고등학교와 경성공고 시절은 물론 부인이었던 수필가 김향안(본명 변동림ㆍ1916∼2004) 여사, 이상의 어머니인 박세창 여사 등 이상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 등 모두 56점이 전시된다.

전시될 육필원고는 ‘오감도’ ‘이상한 가역반응’ ‘조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27점으로, 이 중 한글로 된 원고는 ‘오감도’ 4, 5, 6호다. 이 자료들은 대부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수집한 것들로, 이 전 장관은 1960년대 뒷골목 고물상까지 뒤져 이상의 자료를 찾아냈다. 이번 전시회를 마련한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은 이 전 장관의 부인으로, ‘영인문학관’은 이어령의 ‘영’과 강인숙의 ‘인’자를 합쳐 지은 이름이다.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다 독자들의 비난으로 중단한 육필원고 한글판 ‘오감도’.
이번 전시에는 생존문인들과 화가가 그린 이상의 초상화, 이상에게 바치는 후학들의 헌사를 모은 코너(시인 김남조 김승희 문정희 성춘복 이근배 정진규 추은희, 소설가 권지예 구효서 김승옥 김채원 마광수 서영은 신중선 윤후명, 평론가 강인숙 권영민 김용직 김우종 김화영 이태동 참여)도 따로 마련했다. 부인 변동림이 이상 사후 반세기가 지난 후 이상문학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비석을 남기게 된 사연도 소개된다.

강인숙 관장은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던 그 어둡고 병적이던 이상의 방을 2010년의 시공간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는 것이 전시의 기획의도”라고 밝혔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