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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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 의한, 외국인을 위한’ 언어장벽 없는 세상 만들기

다문화시대 자원봉사도 국제화 ‘바람’
“임신한 아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제가 베트남어를 몰라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제 아내와 통화 좀 해주시겠습니까.”

전화 통역 봉사단체 BBB코리아에서 활동 중인 송영념(38)씨가 최근에 전화로 받은 요청이다. 그는 24시간 휴대전화를 꺼 두는 법이 없다. 언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어교육 봉사단체 ‘호프’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봉사자가 서울지역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호프 제공
송씨는 베트남 여성과 통화한 뒤 남편에게 “부인이 베트남 음식을 그리워해 베트남 음식자재를 구하길 원하고 있다”고 전해 줬다. 그러자 남편은 “전에 같이 간 식료품점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아내가 원하는 음식자재를 구할 수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송씨는 다시 베트남 여성과 통화한 뒤 남편에게 “그곳에는 베트남 식품은 많지 않고, 부인이 원하는 재료도 없다고 한다”면서 아내가 원하는 식료품점을 남편에게 알려주고 통화를 마쳤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지난해 120만명을 넘어서는 등 다문화·글로벌 사회로 접어들면서 외국인 대상 사회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구촌사랑나눔 등 이주민 인권 신장을 위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주한 외국인들도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28일 BBB코리아에 따르면 언어장벽에 막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1588-5644로 전화를 걸면 37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자동으로 연결돼 17개국 언어로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관광차 한국을 찾은 외국인부터 배우자나 사업주와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길 원하는 결혼이주자와 이주노동자, 병원·경찰서 등 긴급한 상황에 처한 외국인들이 이 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

대학 시절 전공을 살려 6년째 일본어 통역 봉사를 하는 안형준(40)씨는 “일본 관광객들이 길을 묻거나 쇼핑을 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국을 찾은 관광객에게 도움을 주는 한편 ‘가깝지만 먼 이웃’인 한일 양 국민의 우정을 도모한다는 면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영어교육 봉사단체 ‘호프(HOPE)’는 반대로 외국인들이 주축이 돼 한국인에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외국인 40여명이 서울·경기지역의 보육원이나 지역 아동센터 등 20곳에서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올 초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사이버 영어 공부방’ 시범사업에도 참여해 호평을 받았다. 교과부 관계자는 “워낙 꾸준히 봉사를 한 분들이라 그런지 열의가 높고 교육의 질도 뛰어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사이버 공부방 강의를 본 전남 순천의 한 초등학교 교장의 요청으로 2박3일간 영어캠프를 진행하기도 했다.

호프의 백주환(31) 대표는 “주변 외국인 친구들 중에 봉사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기회가 없거나 ‘비자 외 활동’에 대한 우려 탓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직접 봉사단체를 만들게 됐다”면서 “아이들을 돕는 보람도 있지만,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자연스럽게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나눔의 집’ 국제활동팀 소속 외국인 청년들은 군대위안부 할머니들을 정기적으로 찾아 말동무가 되어 주고, 위안부 문제를 외국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