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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고원 명포수와 흰머리 호랑이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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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과 순수의 포효속 ‘찌든 야만’ 말끔히
김탁환 ‘밀림무정’
개마고원을 누비고 백두산을 휘달리던 흰머리 호랑이, 그 조선 호랑이와 겨루던 개마고원의 명포수. 설정만으로도 거친 야성과 순수의 포효 속에 도시의 찌든 야만이 씻겨질 것 같은 느낌이 충만하게 차오르지 않는가. 15년 구상 끝에 이 작업을 장편소설 ‘밀림무정’(전2권·다산책방)으로 완성시킨 작가 김탁환(42·사진)씨를 만났다.

“처음에는 호랑이를 쫓는 시인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백석이 니콜라이 바이코프 ‘식인호’를 번역했다는 사실을 알고, 실제로 시인 백석이 식인호와 마주쳤다면 어떨까 싶은 상상을 했는데 소설을 쓰다 보니 시인의 존재감보다 명포수의 존재감이 점점 커져서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지게 됐습니다. 다만 문장을 쓸 때는 시인의 감수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요.”

그는 “1940년대 일본의 해수(害獸) 말살정책에 따라 약 150마리의 호랑이들이 사살됐고, 북한지역에서 마지막 호랑이가 사살됐다는 자료를 보고 단순히 밀림에서의 사투가 아닌, 밀림만큼 속을 알 수 없는 대도시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1권에서는 개마고원 일대에서 흰머리 백두(白頭) 호랑이와 대적하는 포수 ‘산’ 이야기가 펼쳐지고, 2권에서는 이른바 일제의 ‘해수 격멸대’에 포획된 포수 산과 흰머리가 경성으로 압송돼 벌어지는 도시의 밀림 이야기가 펼쳐진다.

7년여에 걸친 개마고원 일대 산과 흰머리의 대결은 결국 해수격멸대에 둘 다 사로잡히면서 무대를 경성으로 옮기게 되고, 거친 야성의 밀림에서 내적 야만으로 가득찬 도심으로 옮기는 순간 산과 흰머리 호랑이는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창경원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한 백두, 갇힌 호랑이와 싸울 수 없는 산. 그들은 다시 도심이라는 밀림으로부터 대탈주를 감행하면서 서로 적이되 적이 될 수 없는 숙명을 감싸안고 천길 절벽 아래로 투신한다.

소설만 쓰기 위해 카이스트 교수직을 사직한 뒤 처음으로 이 소설을 펴낸 김탁환은 “진짜 적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는데 요즘엔 적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희미해진 것 같다”면서 “소설이 내 적이고 동지이며, ‘밀림무정’ 이것이 지금은 내가 넘어서야 하는 가장 가까운 적 같다”고 덧붙였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집필에 몰두하고 산책을 한 뒤 다시 퇴고를 하는 수도자 같은 자세로 소설쓰기를 수행해 왔다는 김탁환씨. 그는 이번 소설에서 백두의 숫눈 같은 사내와 흰머리를 그려내면서 작금의 소설판 혹은 독자들의 취향이 헤밍웨이나 톨스토이 같은 선 굵은 서사로는 환영받을 수 없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단독자의 심정으로 홀로 쓰고 방랑자와 추격자의 자세로 떠돌면서 호랑이 혼으로 소설을 완성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