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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할머니 해냈어요”… 김원진, 펜싱 에페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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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때부터 할머니가 키워
“산소 찾아 金 바치겠다”
“집안이 어려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느라 할머니가 저를 키우셨습니다. 제가 태극 마크를 다는 것도 못 보고 돌아가셨는데 금메달을 따니 할머니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에페 금메달 리스트 김원진(26·울산광역시청)은 18일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할머니 생각에 시종 눈시울을 붉혔다. 기쁜 소식을 꼭 전해드리고 싶은 할머니가 이제 없어서다. 10살 때부터 부모님 대신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는 2005년 손자가 태극마크를 다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한국 펜싱 대표팀의 김원진이 18일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에페 결승에서 리궈제(중국)를 13-11로 제치고 금메달을 따낸 뒤 포효하고 있다.
광저우=연합뉴스
김원진은 이번이 두 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선 개인전 8강에 탈락했지만 단체전에서 힘을 보태 금메달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 당당히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한풀이를 깨끗하게 했다.

김원진은 1997년 서울 덕원중학교 1학년 시절 소년체전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펜싱부 형들이 조회 시간에 예쁜 여학생으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것을 보고 ‘나도꼭 저 자리에 서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펜싱부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정작 김원진이 중3 때 소년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했을 땐 교무실에서 조촐하게 축하파티를 열어줘 그토록 기대했던 ‘꽃다발 소녀’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밝고 씩씩한 성격의 김원진이지만 중학교 시절 도시락도 못 싸갈 정도로 어려웠던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가세가 기울면서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고, 김원진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만 했다. 10살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김원진으로선 할머니가 사실상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김원진은 이러한 설움을 날려 보내려고 운동에 전념했고, 마침내 2006년 2월 대표선수로 발탁됐다. 하지만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었던 할머니는 1년 전 세상을 떠났다.

김원진은 “대학 1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고 할머니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해드렸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집에 갈 수 없다고 말씀드리자 ‘못 오냐’라는 말만 하시고 끊으셨다”며 “그게 할머니와 마지막 통화였다. 그 말씀만 남기시고 돌아가셨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할머니 묘를 찾아 이번에 따낸 금메달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광저우=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