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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화신 '나쁜 엄마'들 브라운관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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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순정’ ‘욕망의 불꽃’ 등 TV 드라마
성공욕 불타는 ‘팜므파탈’ 엄마들 욕망 한껏 분출
“희생 강요 40∼50대 부모세대 억압된 정서 표출”
“시청률 올리려는 막장코드 연장선” 시선도
TV 속 ‘어머니’의 모습이 변화하고 있다. 요즘 브라운관을 채운 어머니는 푸근하고 정겨운 이미지보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날선 독기를 내뿜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식의 성공이 곧 행복이라 여겼던 어머니의 모습도 온데간데없다. 본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식도 걸림돌이고, 도구일 뿐이다. MBC 주말극 ‘욕망의 불꽃’ 나영(신은경 분), SBS 주말극 ‘웃어요 엄마’의 복희(이미숙 분)와 민주(지수원), SBS 일일극 ‘호박꽃 순정’ 준선(배종옥 분)은 야망을 향해 달려가는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사진 왼쪽부터 SBS ‘호박꽃 순정’ 강준선(배종옥 분), MBC 주말극 ‘욕망의 불꽃’ 나영(신은경 분), SBS ‘웃어요 엄마’ 조복희(이미숙 분).
◆드라마 속 엄마, 독을 품다


‘욕망의 불꽃’에서 나영은 살인과 낙태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나영은 재벌가의 일원이 되기 위해 결혼 전 낳은 딸을 버리고 이를 숨긴 채 재벌가 자제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또 남편이 밖에서 낳은 아들 민재(유승호 분)를 친아들처럼 키우지만 이는 회사를 얻기 위한 이용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웃어요 엄마’ 복희는 자신의 못다 이룬 배우의 꿈을 딸 달래(강민경 분)에게 강요하는 엄마로, 딸을 꼭두각시로 전락시킨다. 여교수 민주에게 자식은 고달픈 지난날을 상기시키는, 가시 같은 존재일 뿐이다. ‘호박꽃 순정’의 준선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쁜 엄마’를 보여준다. 성공을 좇아 세 남자를 거친 준선은 첫 남자와 사이에서 가진 딸 순정(이청아 분)을 두 번째 남자에게 맡긴 뒤 자신의 행복을 찾아 세 번째 남자와 결혼한다.

특히 최근 드라마에서 화장기 없는, 수수한 엄마는 없다. 화려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비롯해 진한 메이크업까지 팜므파탈로 무장한 엄마들은 때론 지독하게 때론 치밀하게 자신의 욕망을 분출한다. 재벌가 며느리로 분한 신은경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럭셔리 아이템으로 치장했다. 주로 모피, 퍼 소재의 의상과 진주, 메탈 등 눈에 띄는 액세서리는 극중 신은경의 욕망을 극명하게 설명해준다. 극중 전직 여배우 이미숙은 과장된 액세서리를 통해 속물 근성을 지닌 엄마의 모습을 표현했고, 배종옥 역시 고가의 명품 브랜드인 의상과 액세서리로 강렬한 느낌을 살렸다. 이들 엄마들은 한결같이 날카로운 눈빛을 강조하기 위한 스모키와 짙은 색조 메이크업을 했다.

◇MBC ‘욕망의 불꽃’에서 윤나영(신은경 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거짓을 일삼고, 자식을 이용하는 냉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 엄마상’ 파괴는 변화하는 시대상의 반영인가

자신의 출세와 성공만을 추구하는 ‘엄마상’이 최근 브라운관을 채우고 있는 것은 변화하고 있는 시대상과 무관치 않다. 과거 유교 윤리에 따라 가족을 위해 본인의 삶도 포기해야 한다는 ‘엄마상’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면, 요즘 나오는 ‘독한 엄마’ 캐릭터는 40∼50대 부모 세대의 억압된 정서의 표출이자 항변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주 시청층인 40∼50대가 처한 현실은 부모를 부양하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식 세대로부터는 봉양받지 못하는 샌드위치 세대”라며 “그들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데 대한 심리가 개별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이른바 ‘나쁜 엄마’ 캐릭터로 표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국민엄마로 대변되는 김혜자가 맡은 극중 캐릭터를 보면, 이런 시대적 변화를 알 수 있다. 그가 ‘전원일기(1980∼2002)’에서 늙은 시어머니와 자식 세대에게 ‘현모양처’의 헌신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줬다면, ‘엄마가 뿔났다(2008)’에서는 “내 인생을 찾고 싶다”며 휴가를 선언한다. 김혜자는 엄마의 자아 찾기를 넘어 영화 ‘마더(2009)’를 통해 엄마의 어두운 면을 투영, 전통적인 엄마의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또 다른 ‘국민엄마’ 김해숙도 ‘부모님전상서(2004∼05)’ ‘소문난 칠공주(2006)’에서 너그럽고 정겨운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더니 ‘카인과 아벨(2009)’ ‘하얀 거짓말(2008∼09)’에서는 자식을 향한 비뚤어진 모정을 섬뜩할 만큼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러다 최신작 ‘인생은 아름다워(2010)’에서는 남모를 아픔을 가진 독립적 존재로서의 엄마를 그려냈다.

◆앞으로 엄마는 더 독해질 것

하지만 ‘나쁜 엄마’ 캐릭터는 말초신경을 자극해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는 ‘막장코드’의 연장선이라는 의혹의 시선도 받고 있다. ‘나쁜 엄마’가 보여주는 이기주의가 자아를 찾아가는 심리를 반영한다는 명목 하에 각종 드라마에서 선보이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어보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악행에 대한 내성을 체득한 시청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고, 강렬한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살기 빠듯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강한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요구와 맞물려 ‘나쁜 엄마’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말극, 일일극에서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질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견해다. 윤 교수는 “내 것만 빼앗기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착한 내용은 상식이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다”며 “‘엄마’가 자기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자신의 것을 쟁취하기 위해 더 강한 캐릭터로 변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은나리 세계닷컴 기자 jenr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