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야만 온전히 편안했어요!”
서른 살 그녀는 알코올 중독으로 이미 두 차례나 입원했었다. 무책임한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느라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가장 노릇에 지친 어머니는 사소한 일에도 매질을 일삼았다. 답답한 집구석에서 도망치기 위한 탈출구로 선택했던 남편은 무능하고 잔학했다. 외딴 섬에 갇힌 느낌이었다. 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오직 알코올만이 평안을 주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알코올로 버티다 문득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서른 살 그녀는 세 번째 입원을 했다. 그녀에게 알코올은 무엇이었을까?
관자놀이 안쪽 깊숙한 곳에 ‘섬엽’이 있다. 백합 조개만한 신경덩어리가 뇌 속에 섬처럼 떨어져 있어 ‘섬엽’이라 부른다. 섬엽은 몸에서 보내는 온갖 신호를 받아들인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위장의 꿈틀거림이 섬엽으로 들어온다. 섬엽은 몸에서 받은 신호를 감정으로 번역한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두려움으로, 위장의 꿈틀거림은 역겨움으로 바꾸는 식이다. 이렇게 번역된 감정 가운데 고통이 있다. 고통을 잊으려 어떤 이들은 술을 마신다. 이때 알코올은 섬엽이 창조한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진통제이다. 매혹적이되 치명적인 심리적 진통제 말이다. 허나 진통제로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호수 한가운데 수상좌대가 외딴 섬처럼 떠있다. 세상에 상처 입은 한 여자(서정)가 호숫가에 살고 있다. 그녀는 작은 배를 타고 낮에는 밥을, 밤에는 몸을 팔았다. 어느 날 세상을 피해온 한 남자(김유석)가 수상좌대에 짐을 풀었다. 그는 권총 한 자루를 들고 죽음을 꿈꿨다. 우울한 비가 호수에 흩뿌리던 날이었다. 세상에 상처 입은 여자는 소주 한 병을 들고 세상을 피해온 남자를 찾았다. 두 사람은 수상좌대에 걸터앉아 우울한 비를 맞으며 소주를 나눠마셨다.
술은 잠시나마 상처를 망각시켰다. 그리고 소주병을 건네는 순간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은 이렇게 시작했다. 상처 입은 여자는 죽음을 꿈꾸는 남자에게 집착했다. 죽음을 꿈꾸는 남자는 상처 입은 여자를 외면하지 못했다. 외딴 섬 같은 수상좌대에서 두 사람은 끔찍이도 서툴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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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
하지만 그만큼 사랑을 느끼는 능력도 망가진다. 그렇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강한 섬엽을 가졌다는 증거다. 영국의 시인 존 던은 “어떤 인간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존 던의 시처럼 누구도 고립된 섬처럼 살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 섬으로 도망칠 뿐이다. 알코올중독 환자가 심리적 섬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은 그저 따뜻한 누군가이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제는 오직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카프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