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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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화' 핑퐁..정부 즉각대응 자제

"北 의도파악 우선"..비공식 채널 가동 가능성
미.중 컨센서스 변수..조심스런 접점모색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외교전의 초점이 '남북관계'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미.일.중.러 5자가 '선(先) 남북대화-후(後) 6자회담'으로 대응기조를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남측을 상대로 대화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형국이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6자회담 재개를 겨냥한 사전정지 차원에서 남북대화의 '군불'이 지펴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남북대화를 바라보는 5자의 시각이 제각각이어서 상황이 그리 순조로울지는 물음표다.

특히 남북이 구상하는 대화에는 서로 다른 '복선'이 깔려있는데다 향후 6자회담 재개와도 내용상으로 연계돼있어 남북대화 재개 자체가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우리 정부가 선 남북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표면상으로 6자회담 재개의 여건조성 차원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북핵문제를 남북 테이블로 가져오겠다는 포석이 깔려있다.

북핵문제의 특성상 관련국들의 협력이 긴요하지만 원칙적으로 한반도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북핵해결을 위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논의의 이니셔티브를 끌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우리 정부가 최근 6자회담 재개 전제조건과 관련한 5자간 협의가 마무리되면 이를 남북대화 채널을 통해 제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흐름과 닿아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성환 외교장관이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을 최근 직.간접적으로 재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선 남북대화론에는 6자회담 재개에 앞서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를 끌어내겠다는 포석도 깔려있다. 한 당국자는 "페이지(국면)를 넘기려면 두 사건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핵문제와 천안함ㆍ연평도가 우리 정부가 구상하는 남북대화의 주의제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대화를 워싱턴(북미대화)과 베이징(6자회담)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로 보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문제와 같은 '빅카드'를 남북대화 채널에서 논의하려고 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만 한.미.일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나서서 한목소리로 남북대화를 주문하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에 이어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ㆍ정당ㆍ단체 연합성명'을 통해 '당국간 회담'을 주장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유화적 제스처의 성격이 짙다는게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남한은 남북대화에서 다룰 '내용'에, 북한은 남북대화가 재개된다는 '형식'에 각각 방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입장차 속에서 남북 사이에는 대화재개를 놓고 서로에게 공을 넘기며 명분을 획득하려는 '핑퐁게임' 양상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의 잇따른 대화공세 속에서 외교가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우리 정부의 대응방향과 수순에 쏠리고 있다. '공'을 넘겨받은 우리 정부가 어떤 방향과 전략을 갖고 대응하느냐가 앞으로 6자회담 재개 논의의 흐름과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단 정부는 북한의 대화제안에 대해 '진정성 없는 평화공세'라는 시각을 보이며 즉각적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서둘러 대화재개에 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한 이후에 대화재개 논의에 응하겠다는 '신중모드'다.

정부의 핵심당국자는 "북한의 의도를 다각도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지만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일으킨 북한이 과거의 도발행위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대화하자고 하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 같은 신중한 입장에는 연초 남북관계와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국내 보수여론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고 정부 소식통이 전했다.

여기에는 미국도 보조를 취하고 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미.중 외교장관 회담이 끝난 뒤 정례브리핑을 갖고 "협상을 약속하기 이전에 북한이 진정한 진지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북한이 해야할 명백한 일들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로서는 북한의 대화제안을 곧장 무자르듯이 거부할 경우 북한이 대화무산의 책임을 우리측에 전가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북한의 의도를 파악해보겠다"는 선에서 대응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중관계가 변수가 되고 있다. 19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에 관한 큰 틀의 밑그림을 모색하고 있는 양국으로서는 남북대화 재개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북한이 취하고 있는 대화공세가 일정한 탄력을 받을 공산이 있다. 물론 미국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존중'해주고 협력하는 자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한반도 정세운용의 틀 속에서 보다 전략적인 결정을 도모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양제츠(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워싱턴 회담에서 동북아내 역내 안정이라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북한이 2005년 공동성명 하의 의무를 북한이 준수하기를 원하고, 대화에 열려있다는 점도 확인했으며, 남북간의 대화 중요성도 이해하고, 6자회담의 맥락에서 진지한 협상이 재개되는 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크롤리 차관보가 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정부로서는 조심스럽게 나마 대화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우리 정부는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비공식 채널을 가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북대화 논의가 6자회담 재개의 출발점이 될 지, 아니면 또다른 장애변수가 될 지 외교가의 신경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