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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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소급시점 없어 혼란

2001년 사건 징역형 받은 수형자 재심서 감형 받아내
30년전 사건도 무죄… 무분별한 면죄부 논란
학계 “2002년 합헌 이후 사건만 무죄로 봐야”
헌법재판소가 2009년 형법의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하면서 소급 적용 시점을 따로 정하지 않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수십년 전 혼인빙자간음죄를 저지른 범죄자까지 모두 구제 대상이 된 탓이다. 2002년 전만 하더라도 헌재에서 합헌 결정났던 조항이다. 앞으로 헌재가 형벌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할 경우에는 위헌 소급적용 시점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헌재가 한 차례 합헌으로 판단했다가 나중에 위헌으로 뒤집은 경우 합헌 결정 이후 이뤄진 행위만 무죄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7일 대법원에 따르면 부산고법은 2004년 특수강도, 강제추행, 절도, 사기, 횡령, 협박, 혼인빙자간음, 폭행 등 11개 혐의로 징역 9년이 확정돼 수감 중인 A(37)씨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혼인빙자간음 부분을 무죄로 판단, 징역 7년6월을 선고했다.

A씨는 지인 등 20명가량에게 사기 쳐 수억원을 가로채고, 승용차에 탄 여성을 칼로 위협해 2시간 이상 감금하고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가정이 있던 그는 2001년 말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여성 B씨를 결혼할 것처럼 속인 뒤 간음한 혐의도 받았다. 이후 2003년 5월까지 B씨를 폭행이나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 B씨 부모를 속여 수억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A씨는 헌재가 2002년 혼인빙자간음죄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하기 전에 범죄를 저질러 징역형을 받았다.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그는 2009년 위헌 결정이 나자 이듬해 재심 신청을 했고, 법원의 감형 결정으로 내달 출소 예정이다. 한 변호사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헌재가 합헌을 결정한 이전에 저지른 범죄까지 구제하는 건 법리적으로나 국민 법 감정으로나 문제가 있다”며 “대개 혼인빙자간음죄는 사기나 폭행이 병합되는 경우가 많아 수형자들의 재심 신청도 늘 수 있다”고 말했다.

혼인빙자간음죄처럼 처벌법규 제정 당시엔 범죄로 인식되다가 시대 상황 변화로 위법성이 희미해진 경우 위헌 소급 적용 시점을 따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30여년 전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지난해 무죄를 받은 C씨 사례도 마찬가지다. 1979년 제주도에 살던 C씨(당시 24세)는 4년간 동거한 여성과 결혼을 거부했다가 고소당해 이듬해 유죄가 확정됐지만, 헌재 위헌 결정으로 지난해 무죄를 받았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70∼80년대 의사나 사법연수생 등 사회지도층이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당하는 사례가 많았고, 당시 국민 정서 등에 비춰볼 때 남성이 결혼을 내세워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건 파렴치한 범죄였다”고 지적했다. 한 법학자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존재했던 반세기 동안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은 모든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