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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행복은 GDP순도 행복지수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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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에 매달리는 부모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항의하듯, 최근 “행복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며 GDP 대신 국민행복지수를 측정하고 이를 정책의 안내자로 삼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행복’보다는 ‘효용’을 말해온 경제학자는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김이석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인간의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각 개인이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수단을 선택한다고 보면, 소득의 증가는 수단의 증가를 의미한다. ‘겸손’한 경제학자들은 감히 목적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어떤 목적이 더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더 가치 있는 것인지는 각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의 평균적인 소득이라는 개념은 가능하지만, 그들의 평균적인 행복수준이라든가, 행복의 총합과 같은 개념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 어떻게 개인들의 행복을 더하고 뺄 것인가. 따라서 소득의 증가가 곧 행복의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득의 증가는 목적을 추구할 수 있는 수단의 증가를 의미하며, 이는 곧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됨을 의미한다.

‘행복은 돈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느냐는 한 설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과반수가 행복은 돈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이 돈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에서는 이를 한국인의 물질적 집착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달리 해석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단의 증대가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고 올바로 생각하고 있다. 전쟁을 겪었기에 생존해야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행복의 필수요소로 돈을 언급하고 있을 뿐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에도 ‘국민행복’ 등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국민행복지수’를 내세우며 계층 간, 국가 간 ‘행복’을 비교하곤 한다. 이것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대체로 국민소득에다가 이런저런 항목을 보태고 뺄 것이고, 또 각 항목에다 특정한 가중치를 줘 국민행복지수를 계산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절차를 정당화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여러 국민행복지수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미국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경제학을 인간행동학(praxeology)의 중요한 한 분야로 간주했으나 경제학뿐만 아니라 역사, 심리학, 사회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해 많이 알 것을 주문했다. 경제학 이외에 여러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엄밀하게 통합한 후 행복에 대해 말해도 늦지 않다. 행복은 GDP 순이 아니지만 국민행복지수 순서도 아니다. 행복에 대한 관심은 정말 필요할지 모르지만, 행복을 기계론적으로 다루는 것은 정치적 갈등을 불러올 수 있고, 어쩌면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이석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