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공포에 생필품이 동이 났다.”
도쿄 신주쿠 이치가야의 한 슈퍼마켓에 15일 오전 주민들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쌀과 우유, 빵 등 식량은 물론이고 기저귀와 휴지, 물 등 기초생필품을 쇼핑바구니에 쓸어담았다. 일부 업소는 품목별로 1인당 한 개씩으로 판매량을 제한했는데도 오전을 넘기지 못하고 진열대가 텅 비었다.
도쿄시민들의 사재기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대국민 기자회견이 촉발했다. 간 총리는 이날 오전 후쿠시마(福島) 원전의 방사능 유출 가능성을 인정했다. 여기다가 수도권에서 정상수치를 수십배 넘어선 방사선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도쿄시민들이 패닉상태에 빠진 것이다.
방사선 수치가 정상의 21배 정도 높게 검출된 도쿄 도심의 주민들이 더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슈퍼와 편의점, 생필품마트를 돌며 물건을 사모았다. 사재기를 방지하기 위해 1인당 판매량을 제한하자 일부 주민들은 아예 가족 모두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며 식량과 생필품을 사모으고 있다.
신주쿠에서 가장 큰 마트인 ‘돈키호테’도 식품과 생필품 코너가 개장 수시간 만에 텅 비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원전사고로 방사능물질이 계속 확산될 경우 장기간 외출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도쿄시민들이 비상식량을 확보하려고 이 같은 사재기를 하는 것이다.
연료 확보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도쿄시내의 주유소에는 가솔린을 사려는 차량들이 이날 오전부터 몰려들어 장사진을 쳤다. 이 때문에 일부 주유소는 정오를 넘기지 못하고 석유가 품절되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대형 재난이 많은 일본이기는 하지만 이런 대대적인 사재기 현상은 근래 보기드문 현상이다.
일본 국민들은 그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믿으며 신중하게 대응해 왔는데 이날부터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초기부터 정부대변인으로서 침착하게 대응해 왔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방사능 유출의 향후 전망을 추궁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땀을 뻘뻘 흘렸다. 그의 이러한 모습이 TV화면으로 생중계됐다.
각 지상파 방송은 원자력 전문가들을 출연시켜 방사능이 대량 유출될 경우의 대피 행동요령을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대책을 일단 믿고 따라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외출을 삼가고 방사성물질의 체내 유입을 막기 위해 마스크와 모자, 긴 소매의 옷을 착용해 피부를 노출하지 않도록 하는 등 피폭 예방수칙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의 한인사회도 동요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밀집해 사는 신주쿠의 동경한국학교 주변에서는 서울행 비행기표를 구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학교 주변에 사는 한 인사(38)는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높아져 장기전으로 갈 것처럼 보여 한국에 피신해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교포들이 한국행 항공표를 구하고 있지만 수요자가 급증해 표가 동이 난 상황이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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