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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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산책] 가꿔 나가야 할 집단기억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피습을 접하면서 오랜 기억으로 남아 있던 ‘반공’이란 단어가 새삼 떠오른다. 권위주의 시절 지배집단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집단기억을 형성하면서 다른 기억들을 억압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잘못된 과거 기억에 비판과 후회가 이어지며 잊혀지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이 단어가 다시 기억나는 건 무슨 까닭인가. 최근에 펴낸 ‘기억의 지도’의 저자 제프리 올릭 교수는 이것이 바로 집단기억의 위력이라고 했다.

신은영 도서출판 옥담 대표
집단기억이란 한 민족이나 사회집단이 공통으로 겪은 역사적 경험으로, 그것을 직접 체험한 개개인의 생애를 넘어 집단으로 보존되고 기억되는 것을 이른다. 올릭 교수는 집단기억이 주로 역사와 역사교육을 통해 형성된다고 강조한다. 한국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 ‘식민사관, 노론사관’ 같은 말이 나오게 된 상황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일제는 한국인의 저항의식을 말살하고 일제의 지배정책에 순응하도록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 교육을 시행했고 이것은 해방된 이후에도 집단의 내면에 남아 60년이 지난 지금 교과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집단의 정체성은 그 집단을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집단기억으로 똘똘 뭉쳐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 반면 일제에 의해 강요된 식민사관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민족의식 말살정책으로 기능했지만 정작 일본이 저지른 해악을 반성하고 인권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회를 막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에 서로 다른 영향력을 미친다. 지금도 집단 기억을 이용하려는 정치 부류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정치 집단은 기억을 필요에 따라 재구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집합적 삶의 터전인 국가나 사회의 존립과 직결된 집단기억은 구성원들이 공들여 가꿔야 할 역사적 책무임이 분명하다.

신은영 도서출판 옥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