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책동네 산책] “불평가들은 목소리를 높이자!”

못 견디겠다고, 누가 나를 좀 도와달라고 비명이라도 지를 것이지…. 꽃피는 봄날, 출판사 한구석에 앉아 또 한 명의 카이스트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학점이 3.0 이하가 되면 0.01씩 떨어질 때마다 6만원씩 ‘게워내야’ 하는 ‘징벌적’ 등록금제가 문제였다, 또는 당사자의 나약함 탓이었다는 식의 분별을 하고픈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한 해 300명 가까운 대학생들이 자살을 택한다고 한다. 정말이지 궁금했다. 왜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하고만 대면하다 스스로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는가. ‘자기긍정’하고 ‘자기계발’하라고 부추기고 독려하는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왜 청춘들은 ‘자기부정’의 절벽으로 향하는가. 무엇이 이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강경미 꾸리에 대표
‘카이스트 괴담’을 접했을 때 문득 미국에서만 천만 부가 팔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떠올랐다. 책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치즈가 왜 사라져버렸을까’라고 묻거나 불평하지 말고, 미로가 왜 이리 생겨먹었나 따지지 말고, 재빨리 상황 파악하여 그 속에 감춰진 치즈를 찾아낸 두 마리 생쥐를 본받으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형 자기계발서로 3000억원 시장을 일구겠다며 기염을 토한 베스트셀러 출판사 대표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사회에 대한 분노는 사석에서 표출하면 되지 책에다 그것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신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계발하라는 다그침 속에 ‘네 삶 밖의 세계’에 대해선 허튼 소리 말라는 위협이 담겨 있다. 탈락하든, 쫓겨나든, 절망하든 모든 것은 네 탓이란 의미다. 자기계발서를 포함한 ‘퍼스넬리티 산업’이 경쟁사회의 불안과 절망을 먹고 자라는 ‘좀비산업’이란 지적도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이 시대 ‘긍정의 전도사’들은 청춘의 아픔을 위무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지만 이 아픔이 지닌 사회적 원인에 대해선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얼마 전 출간된 ‘긍정의 배신-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라는 책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모든 불평가들은 목소리를 높이자!”고 썼다. 제발 자기 탓하며 죽지 말고, 이 무력한 공동체에 책임 물으며 살아남으라고, 청춘들에게 권하고 싶다.

강경미 꾸리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