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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병사 죽음으로 내모는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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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염 앓던 훈련병 ‘꾀병’ 낙인·폭언에 자살
장병 의료접근권 개선 시급
올 들어서만 훈련병 노모(23)씨가 행군 후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숨지고, 중이염을 앓던 정모(20) 훈련병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자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르는 등 군의 의료체계에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다. 특히 제대로 된 진료를 호소하는 정 훈련병을 군의관이 매몰차게 진료실에서 내쫓은 사실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로 드러나면서 군 장병의 의료접근권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30일 인권위에 따르면 육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던 정씨는 훈련소 지구병원에서 수차례 진료를 받고도 낫지 않자 2월18일 담당 군의관에게 상급병원 진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바로 묵살당하고 진료실에서 쫓겨났다. 이어 마주친 간호장교를 통해 “민간 병원이나 다른 병원으로 보내 달라”고 다시 요청했지만, 해당 군의관은 “그럴 정도가 아니다”며 무시했다.

정씨는 그날 이후 ‘꾀병 환자’로 낙인찍혔다. 소대장 양모 중사는 그달 26일 지구병원 외진자 명단에서 자신이 빠진 이유를 묻는 정씨에게 “이 ××야. 군의관이 문제 없다고 하는데. 앞으로 귀 아픈 것으로 외진 갈 생각하지 마”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정씨는 ‘2월4일부터 귀가 먹먹했는데 아직 안 나았어요. 이젠 아예 꾀병이라고 합니다. 정말 미안해 엄마. 사랑해’라고 적은 유서를 남기고 이튿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병들의 건강을 소홀히 대하는 군의 관행과 낙후된 의료체계가 결국 애꿎은 목숨을 앗아가는 데 일조한 셈이다.

비단 이번뿐이 아니다. 앞서 2005년 10월에는 제대 직전 군 병원에서 ‘위궤양’ 진단을 받았던 노충국씨가 전역 후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4개월 만에 숨진 일이 있었다.

당시 인권위가 노씨의 의료접근권이 침해당했다며 국방부에 적시의 진료권 보장 등을 권고한 이후 국방부는 MRI, CT와 같은 첨단장비를 확충하는 등 의료체계 개선에 나섰다. 그러나 외형에만 치우친 탓에 장병 의료접근권 자체는 여전히 부실하기 짝이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억압적인 병영 문화와 열악한 의료 서비스 체계 전반을 손대야 한다고 주문한다. 국방부 인권과에서 근무했던 성주목 변호사는 “여전히 대대 의무실은 학교 양호실 수준이고, 아픈 장병은 (치료가 급해도) 군의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형편”이라고 꼬집었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도 “한두 달 기다려 검사받아야 하는데 군 병원에 MRI가 있으면 뭐 하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장병의 의료접근성이나 상급기관 이송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유태영·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