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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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산책] 진정한 영웅

지난 4일부터 KBS 대하사극 ‘광개토태왕’이 전파를 탔다. 광개토대왕은 중원의 열강들 사이에서 고구려를 단숨에 대륙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입지전적인 대왕이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의 대제국을 건설했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으며, 수많은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끈 빛나는 영웅이다. 그를 통해 대제국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과 패기를 드라마로 조명하여, 고구려의 위대한 역사가 대한민국의 근본임을 분명히 하고 민족적 긍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민족의 영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떤가. 이웃 일본만 해도 통일을 이룬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관해 수많은 학술적인 연구와 더불어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으로 부각시키는 반면 광개토대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미흡하기만 하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부터 발해까지, 우리 한민족의 근본 역사를 중국의 변방 역사로 축소시키고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일본 역시 한반도와 관계가 깊은 고대사를 왜곡하고 있지만, 왜 우리만 침묵하는가.

김종선 KBS ‘광개토태왕’ 연출자
4세기 당시 고구려는 사방으로 적대국들에 둘러싸여 고립무원이었다. 분단된 채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알려진 종래 광개토대왕의 모습은 영토를 넓힌 정복왕이었다. 그러나 드라마를 만들면서 만난 그의 모습은 오히려 전쟁을 싫어하고 백성들을 살피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왕이다.

그런데 왜 서릿발치는 전쟁터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을까. 아마도 백성들의 고통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고통 받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가 전쟁터를 누빈 대왕의 귓속에 맴돌았을 것이다. “침략을 받지 않는 강한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그래서 내 자식들은 긍지를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그의 위대함은 전쟁을 하지 않는 동안 더욱 빛났다. 무역 확대를 통해 국부를 증강시켰고, 법을 바로 세워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했고, 타민족과 어울려 살도록 능력 위주의 공정한 사회를 만들었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도약한 진정한 영웅이었다. 지금은 타국이 되어버린 땅에서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마모되어가는 저 광개토대왕비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광개토대왕을 드라마를 통해서 부활시키려고 한다. “왜 아직도 남의 눈치만 보면서 살아가냐고?” “스스로를 지키고 결국엔 남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풍요로운 나라를 왜 아직도 만들지 못했느냐고….” 차제에 우리 고대사 문헌을 보다 많이 발굴하고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안목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