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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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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월(天地日月)도 사람이 없으면 공각(空殼·빈껍질)’이라는 옛말이 있다. 단순히 신본주의에 대칭되는 인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이 막후에서 불가사의한 세계를 계획한다고 해도 결국 세상일은 사람이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람이 위대한 것이다.

사람이 세상일을 할 때는 각자 주어진 ‘힘의 크기’에 따라 하는 것 같다. 그 크기에 따라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청소부가 되기도 한다. 그 역할들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사람이 명멸했다. 유독 뇌리에 박혀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을 말한다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대통령까지 된 성공스토리에 감동받은 것이 아니다. 내 관심사는 역사적 변혁기에서 그의 소명과 역할이다. 소련을 무너뜨린 바로 그것이다.

레이건이 등장한 1980년은 묘한 격변기였다. 보수주의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과 무한경쟁 국면에 돌입했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주력하고 북한은 김정일 후계체제가 공식화되면서 대남 긴장관계는 깊어졌다. 남한에서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주어진 상황은 ‘냉전의 극한대치’ 국면으로 요약된다.

레이건의 선택은 전략방위구상(SDI), 이른바 ‘별들의 전쟁’이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힘으로 무너뜨리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B급 배우가 하는 짓”이라는 등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강행했다. 1987년 독일 베를린 장벽 앞에서는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향해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 울림이 얼마나 컸는지 2년 후 그 장벽이 붕괴되고 이듬해 소련마저 무너졌다. 놀란 북한은 허겁지겁 남북대화에 매달렸다.

레이건 한 사람의 위대한 힘이다. 소련의 붕괴가 신의 섭리라고 해도 레이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엊그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자유광장에는 레이건 동상이 세워졌다. 동유럽에 자유를 되찾아준 공을 기리기 위해서다. 호사가는 레이건의 리더십 어쩌고 한다. 책도 많이 나와 있다. 그보다는 한 인간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새겨보는 게 중요하다.

조민호 논설위원